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Jun 10. 2023

천일 동안 너와 내가 이루어 낸 것

아이가 태어난 지 천일이 됐다. 저 작은 아이가 삶을 살아간 지 천일이나 되었구나 싶으면서도, 아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일이 고작 천일 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놀랍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날을 세어봤다. 1만 2천일. 아이의 10배를 내가 살아왔다. 아이도 천일 동안 많은 경험과 숱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나 역시 만일 동안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많은 변화를 겪었다. 팔뚝만큼 작은 아이였을 내가 그보다 더 큰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내가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며 아이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상상해 본다.


이따금씩 아이의 신생아 시절 영상과 사진을 돌려본다. 분명 내 배에서 나온 아이인데, 지금은 내 배를 완전히 덮고도 남을 정도로 자랐다. 병원에서 퇴원하며 아이를 안았을 때, 우리는 이 작은 아이를 어떻게 길러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카시트에 넣어도 공간이 남아도니, 이 카시트 이대로 괜찮은 건가 걱정할 정도로 작았던 아기. 품에 안아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나의 팔 속 공간이 여유롭게 남을 정도로 아기는 작고 연약했다. 팔뚝만 한 아기가 엄청난 똥을 싸고, 우렁찬 울음소리를 낼 땐 경이롭기까지 했다.


우리는 가족사진을 꽤나 자주 찍은 편이다. 정식으로 찍은 첫 가족사진은 아이가 50일이 되던 날이었다. 언니에게 물려 받은 예쁜 하얀 원피스를 입혔지만 포대기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목을 제 힘으로 세우지 못해 남편이 겨우 안아 세워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 이후 돌, 400일, 두 돌, 23년 기념사진에는 또랑또랑 예쁜 모습이긴 했지만 사진관에서 찍을 땐 절대로 웃음을 보여주지 않는 건 여전하다.



우리 아이는 대근육 발달이 조금 느린 편이었다. 키도 몸무게도 평균 대비 월등히 작았다. 10개월도 안 되어 걷기 시작한 조카와는 달리, 우리 아이는 돌이 지나서야 겨우 걷기 시작했다. 돌이 되기까지는 '월령 별 발달 기준표'를 들여다보며 우리 아이가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 초조하게 확인하곤 했다. 병원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대근육 발달이 조금 늦어 다른 친구들보다 쉽게 지쳐한다고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대근육을 키워줘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아이와 매일 집에서, 밖에서 부지런히 놀아주는 것 외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30개월이 넘은 지금은, 누구보다 빠르고 힘차게 뛰어다니며 "모험을 떠나자!"라고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우리 아기 많이 컸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말을 할 때다. 맘마, 엄마, 아빠를 처음 말할 때도 그러했지만,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성장이 눈에 띄게 보였다. 돌 무렵에는 아이가 말 할 수 있는 단어들을 스케치북에 적어보기도 했다. 단어가 30개쯤 쌓인 이후에는 엄청난 속도로 개수가 늘어갔다.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졌다는 것은, 감정의 표현도 더욱 다양해졌음을 의미했다. 맘마 줘, 물 줘 정도만 요구하던 아이는 점차 정교하고 많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슬아 다리를 이렇게 잡고 엄마 등에 업되, 흔들흔들 움직이지는 말아 줘"라는 내용으로, 아주 명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


신생아 시절에는 아기의 울음을 나름대로 구별하기도 했다. 입을 크게 벌리며 흐앙흐앙 울면 배고픈 것, 속에서 우러나오는 큰 울음은 아픈 것, 다리를 버둥대며 울면 기저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지 못해 저렇게 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많이 우는 건 마찬가지다. 물론 빈도와 지속 시간은 훨씬 줄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걸 엄마가 해주지 않아 짜증이 났을 때 울음으로서 반항하며 강한 의지를 표현한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엄마가 시키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어떤 식으로 회유를 해야 하는지 상황 파악 능력까지 갖춘 셈이다.


육아를 하며 얻은 또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인생의 단짝 친구를 만난 일이다. 임신했을 때 알게 된 그 친구는, 내가 복직한 뒤 아이의 시터가 되어주겠다 자처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평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 일주일에 3일, 우리 아이의 하원을 도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친구와 금전 거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나보다 더 아이를 더 잘 돌봐줄 친구의 도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친구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시터 업무를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해내주었다. 친구가 시터 업무를 잘 수행해 주는 것 보다도, 내가 육아를 하며 느꼈던 감정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 내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친구가 아이와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준다. 친구와 나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오늘 있었던 일, 오늘 느낀 감정을 함께 나눈다.


남편과의 연애초기부터 알고 지낸 다른 친구는, 결혼도 출산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친구였다. 육아 스타일도, 발달 속도도, 취향도 다르지만 우리 아이들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엄마들이 그러하듯 아이들도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라 느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메시지에 답이 바로 오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상황일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본능처럼 느낀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 느껴지는 단짝 친구의 존재는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준다. 나의 단짝 친구들은, 내가 엄마로서의 삶을 보다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아이에게 단짝과도 같은 이모와 친구가 생긴 것 역시 내 육아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완모'를 마친 나. 덕분에 2년의 시간 동안 아이와 한 몸처럼 딱 붙어 지냈다. 육아휴직을 2년 동안 쓰면서 아이의 24시간을 함께 했다. 6개월 전 복직을 한 뒤 우리는 하루의 9시간을 떨어져 지낸다. 모든 시간을 함께 지내던 두 사람이, 꽤나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변화이자 성장이다. 나는 복직 이후를 생각하며 일찍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처음에는 30분, 1시간 남짓 보내는 정도였지만, 돌이 지난 이후 우리 아이는 3시간, 6시간 꽤 긴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엄마아빠를 닮아 낯을 꽤나 가리는 우리 아이의 첫 등원은 역시나 수줍디 수줍었지만, 지금 세 번째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완벽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첫 주는 조금 힘들어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면 누구보다 잘 적응해서 가장 잘 먹고, 가장 잘 자고, 가장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의 분리는 엄마에게도 힘든 일이다. 2년 동안 집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던 나는, 유독 복직을 두려워했다. 복직 전 한 달간은 꽤나 깊은 우울감과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정작 복직하고 나니 내가 걱정하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입사원처럼 어리바리하고, 능숙하게 일을 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힘겨웠지만, 6개월이 지나자 뻔뻔함을 장착해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직원 아닌가" 으쓱해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아이도, 나도 조금만 기다리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경험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일 동안 꽤나 성장했다. 아이는 50cm 남짓했던 작은 몸에서 2배 가까이 성장했고, 몸무게도 4배나 늘었다. 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하던 아기가 엄마가 아프면 옆에서 호호 불어주고, 쓰레기를 직접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웠던 나는 어느새 능숙하게 아이를 씻기고, 빠른 속도로 환복을 시킬 수 있는 스킬을 장착하게 되었다. 요리는 아직 서툴러서 아이는 항상 집밥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아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는 잘 알고 있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항상 부족한 사람이라 여겼다. 제 몸도 제대로 컨트롤할 줄 모르는 몸치에, 모르는 것 투성인 모지리, 수줍음 많고 낯가림이 심한, 어딘가 어설픈 사람. 천일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를 한 팔에 안고도 다른 팔로 무거운 짐을 동시에 들 수 있는 강인한 힘을 가진 사람, 아이가 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의 모든 튜토리얼을 알려줄 수 있는 영리한 사람,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느 상황에서든 뻔뻔해질 수 있는 융통성까지 가진 사람이 되었다. 아니, 원래 나는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던 사람임을 깨닫고, '꽤나 멋진 사람'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천일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발견하고, 이루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것이 행복이구나' 생각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느끼고, 새로운 너와 나를 만났다. 앞으로 우리는 함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게 될까. 나의 지난 천일은 이전의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경험으로 가득했다. 우리의 무수한 앞날도 그러할 테지.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 돌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