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 우리 아빠는 확고한 무교론자.
어린 시절 매주 일요일 아침은 언제나 전쟁이었다. 교회에 가기 싫어 이리저리 핑계를 대는 나에게, 등싸대기를 하사하며 교회행을 강요하는 엄마. 나는 아빠가 옆에 있을 때면 아빠 등 뒤로 숨었고 아빠는 그런 내게 “네가 안 가고 싶으면 가지 마"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미성년자 시절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교회에 갔고, 대학에 올라와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 나는 완전한 무교로 살아갈 수 있었다.
최근에는 언니 또한 엄마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긴 연휴, 우리는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언니는 아침에 엄마와 다녀온 교회 이야기, 최근 자신이 느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언니는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매주 엄마는 혼자 교회에 갔을 텐데, 참 외로웠겠다 싶어”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언젠가는 다 같이 가길 바랄 뿐이지”
언니와 엄마의 말에 갑자기 피가 돌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니, 오히려 피가 더 열심히 돌았을까. 엄마가 바라는 대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엄마를 외롭게 만드는 나쁜 딸이 된 기분이 꽤나 불쾌했다.
“바라지 마. 바라지 말라고.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온 말에, 엄마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말했다.
“아.. 방금 그 말은 정말 충격적이네”
나는 갑자기 감정이 정돈되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나도 어찌하지 못하는 사이 눈물이 흐르며 목이 꽉 막힌 상태로 겨우 말을 이었다.
“모두에게 하나님이 오는 시기는 다른 거야. 엄마는 가장 아팠을 때, 언니는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주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렇게 오는 거잖아. 나는 그게 또 마음이 아프고…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할머니의 죽음에서 배웠고, 사람들의 관계에서 ‘내 뜻대로 해주길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 그러니까, 바라지 마.
엄마에게 상처를 주려던 건 아니었어..”
실제로는 울먹이는 탓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뱉지 못했지만, 나의 ‘무교'를 존중해 달라는 내용과 의도치 않게 엄마를 상처 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남편의 중재로 종교 이야기는 가족끼리 하지 말자고 마무리되었으나, 엄마와 나 사이에는 서먹한 기류가 흘렀다. 애써 속상한 얼굴을 숨기고 설거지하는 내 뒤통수에, 엄마가 다시 한번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어..”
“난.. 어쩌면 어린 시절 엄마가 교회 가라고 날 때렸을 때, 그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는 지도 몰라”
“어머.. 내가 그랬니? 내가 널 때렸다고?”
그날 밤,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 다음 날 아침 내게 고백했다)
다음 날이 되어도 내 머릿속은 한없이 복잡했다. 아빠와 둘이 산책을 하며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내가 어제 너무 심하게 말했나?”
“아니? 네가 한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어. 내가 엄마를 대신해 사과할게.
우리도 살면서 여러 판단을 거친 결과 기독교를 믿지 않기로 결정한 건데.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줘야지”
내가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다. 나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여,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내가 당신을 인도하겠다'는 시혜적인 태도.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집이 대단했다. 특히 나에게 강요를 하는 순간, 죽어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선다. 그랬기에 18년 동안 지속적으로 강요를 받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유독 더 두터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 언니가 대화를 하자며 다가왔다. 나는 이번엔 울지 않고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전했고 언니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엄마, 아빠, 너랑 나 넷이 종교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
“아니, 그 대화는 서로 상처 주는 일밖에 안 돼. 아빠와 나는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달라'라고 말하지, 엄마랑 언니가 교회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아. 그렇지만 엄마와 언니는 ‘모두가 교회를 다니면 좋겠다'는 말을 할 거잖아. 그럼 나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댈 거고”
그렇게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절대 기독교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대단한 교감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고 난 뒤 엄마를 새삼스럽게 알아가면서 나의 많은 부분이 엄마에게서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큰 수술을 마치고 난 뒤 엄마에게 상처 주지 않는, 착한 딸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그 어떤 일로도 엄마를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나와 같은 성격이라면, 이럴 때 마음이 무너질 텐데. 이제 더 이상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데. 그러나 나의 상처를 마주한 순간, 엄마보다 나의 아픔을 우선했다. 평생 효녀로 살고 싶었는데 종교에 있어서는 불효녀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엄마의 마음이 아파도, 나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 나의 상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주님이 엄마와 언니에게 와주시어 그들의 마음을 평안케 해 주심은 한없이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 주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어렵고 힘든 와중에 신적인 존재가 나를 보살피고, 이 또한 주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강한 마음을 먹고 버텨내보고 싶다. 주님의 뜻, 주님의 사랑보다 스스로의 힘을 믿고 싶다. 누군가가 주님의 사랑을 알려주어 배워가기보다는, 내가 직접 길을 찾아가고 싶다. 아직 한참 덜 자란 내가 어디까지 단단해질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고, 모든 배움 끝에 스스로 깨닫고 싶다. 내가 내린 답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고 싶다. 엄마를 울리면서 기독교를 미워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아직 자신을 더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