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실수들

by 아리


여행 준비하면서 실수 안 해본 이가 있을까. 코로나 시국 전에는 쉼 없이 여행을 다녔던 사람이지만, 매 여행마다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실수는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여행에 맛들려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니던 때다. 친구와 홍콩 여행을 가기로 하고 숙소 예약은 내가 하기로 했다. 여행 초보였던 시절이라, 열심히 가성비 좋은 숙소를 검색했고 하루 온종일 탐색한 결과 위치, 가격, 컨디션 모두 적절한 숙소를 찾았다. 최저가에는 조건이 따르는 법. 환불불가 상품이지만 자신 있게 결제를 했고, 그렇게 나는 당장 이번 주말 일정으로 숙소를 예약해버렸다. 여행은 몇 달 남은 상황인데 예약은 이번 달로 해버린 것. 결제 사이트가 엉망이었기에 여러 번 새로고침을 한 탓에 날짜 설정을 잘못해버린 것이다. 3박 일정에 환불불가 상품. 사회초년생에겐 제법 큰돈이 한순간의 실수로 날아가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자책을 하다, 다른 적당한 숙소를 예약했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작은 실수들은 계속됐다. 문 열지 않는 요일인 것도 모르고 먼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이상하게 저렴하다 싶어 주문한 요리는 말도 안 되게 적은 양이었고,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막차를 놓쳐 비싼 택시를 타고 내려오기도 하고.


실수를 한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짜증도 나고 미리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내게 화도 난다. 여행에서의 시간은 천금과도 같은 것인데 작은 실수로 소중한 몇 시간을 허비하다니. 본래 계획했던 것을 하지 못 하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플랜 B를 선택해 대체하게 되는데, 어째, 플랜 B가 되려 근사한 적이 많더라.


적당하게 다시 예약한 숙소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어서 만족스러웠고, 문 닫은 식당 대신 찾아간 옆 식당은 현지인들만 가득해서 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말도 안 되게 적은 양이었던 그 요리는 여행 중 최고의 맛이었고, 막차를 놓쳐서 타게 된 택시의 기사님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고 여행 꿀팁도 알려주셨다.




오히려 내가 실수를 받은 기억도 있다. 몇 해 전, 유럽으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겼는데, 부서에서 나 혼자 가는 것이라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은 다 같이 일정을 맞춰서 함께 출발하는데, 나는 혼자 일정을 잡아 혼자 공항에 가고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혼자 구석 자리에 탑승해서 경유지로 향하는데 갑자기 승무원이 내 자리로 찾아와 무어라 말을 건다. 영어는 리스닝도 스피킹도 약해서 어버버 하며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날 만나고 싶어 하니, 경유지에서 직원을 따라가란 말이었다. 출장길에 누가 날 만난단 말인가?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길래 다시 물으니, 본인들도 영문을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그때부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대체 누가 날 만나고 싶어 하는 거지? 외국인이면 영어로 대화해야 하나? 아니면 회장님이 같은 비행기를 타서 날 만나자고 하는 걸까? 내가 아는 사람이면 이렇게 승무원에게까지 부탁하지 않았을 텐데 누굴까. 남은 비행시간 내내 잠도 못 자고 불안해했다.


그렇게 도착한 경유지. 승무원 중 가장 나이 많은 직원이 무릎을 꿇고 나에게 말을 걸며, 승객들 중 첫 번째로 나를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내 이름을 출력해 들고 있는 나이 많은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은 예의 바른 모습으로 나를 에스코트하며 경유하는 동안에 보이는 모든 줄을 무시하고 나를 1번으로 안내했다. 경유시간도 넉넉한 상태였는데 대체 왜 나를 에스코트하는 것인지 영문을 몰랐다. 직원은 나를 VIP 라운지로 안내했고, 비행시간 맞춰 나오시면 된다고 말했다. 라운지에서도 긴 대기시간 동안 계속 어리둥절하며 음료만 몇 잔 마시다 나왔는데, 퍼스트, 비즈니스 석 승객보다도 나를 먼저 안내해주었다.


결국 나는 나를 왜 에스코트 해 준지도 모른 채 출장지에 도착했고, 나를 만나고 싶다던 그 사람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동료에게 얘기를 하니 자신들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열심히 검색을 해 보던 동료는, 이번 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S모 대기업 임원 중 나와 동명이인이 있다고 했다. 혹시 그 사람과 헷갈린 게 아니겠냐고. 그 임원은 나이 많은 남성인데 설마 나와 헷갈릴 수 있을까? 편견 없는 외국인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나는 어리둥절한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고, 공항에서 캐리어를 받지 못했다. 경유지에서 내 가방이 분실되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몇 주 뒤 집으로 내 캐리어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실수로 에스코트받은 복수였을까. 어찌 되었든 그들의 실수는 나에게 몇 없는 무용담이 되었고 잊히지 않는 출장의 기억으로 남았다.


완벽한 계획형 인간이라 모든 여행 전에 촘촘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곤 하지만,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실수들은 여행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가보지 않은 그곳의 모든 것은 실수를 야기하며, 실수를 해야만 발견하게 되는 것들 투성이다. 얼렁뚱땅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여행지에서의 기묘한 경험들은 내 여행을 시트콤처럼 기승전결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준다. 여행을 못 가는 시대에, 실수로 가득했던 내 여행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 본다. 다시 여행할 수 있는 그때가 온다면,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는 능숙한 여행자가 되지 않게 주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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