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이미 나의 계절 속에 있으니

내 인생의 전환점

by 아리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언제였나요?"


이 질문을 듣고 한참 고민했다. 전환점? 이미 지나갔을까, 아직 도래하지 않은걸까. 지나갔다면 그건 언제였을까. 얼핏 떠오르는 건 대학 입학, 취업, 결혼, 출산. 인생에서 가장 컸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대학 입학. 20년 평생을 속초 작은 마을에서 자라, 서울에 오면서 내 생활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버스조차 타지 않던 내가 1시간 꼬박 지하철을 환승하고 버스를 타며 학교를 다니고, 여중 여고를 나와 남자와 눈도 안 마주쳤던 내가 동기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처음 보는 남자에게도 턱턱 말을 걸게 된 아주 큰 변화. 동시에 성인이 되어 내가 책임지는 삶을 살게 된 것까지. 내 생활과 성격 모든 것이 변화한 지점이다.


취업. 처음으로 내가 직접 돈을 번 경험. 나의 노동이 돈이 될 수 있음을 배우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의 능력 중 어떤 것이 회사에 쓸모가 있는지를 알게 되며 '쓰임새 있는 나'를 알게 되었다. 오롯이 나의 노동으로 받는 '돈'의 가치를 배우게 되었다. 때로는 자존감을, 때로는 건강을 잃기도 했다. 나의 많은 것을 희생해 받게 된 돈으로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어, 월급을 받으면 나를 위한 인형을 하나씩 사모았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수 있었다.


결혼. 남이었던 사람과 가족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 처음으로 집안일을 하고, 내 집을 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결정하며 모든 것을 꾸려낸다. 의 모든 것을 스스로, 그리고 남편과 함께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항상 너무나 잘 맞았던 우리였기에 '너와 나는 비슷하다'라고 마음대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다른 타인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타인과 나를 맞추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다.


출산. 인생에 나 아닌 누군가가 중심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며 나의 사고방식이 가장 크게 바뀐 지점이다. 물론 여전히 모든 것의 중심은 '나'지만, 나 자신만큼 중요한 존재가 생기는 진귀한 경험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아기 돌보는 데 사용한다. 나의 하루 일과가 아기로 인해 결정되는, 지극히 타의적인 하루이면서 이타적인 삶을 살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생활의 변화'일 뿐 내 인생이 '전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사계절과 같다고.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표현되는 인생의 계절 변화가 있어서 겨울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고, 그러면서도 항상 봄 날씨 같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인생에도 계절의 온도 차이처럼 부침이 있는 법이기에 항상 오늘처럼 추울 것이라고 비관할 필요도 없고, 따스한 봄이 언제 끝날까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큰 사건들이 있고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있음에도 내 삶의 방향은 일정했다. 면밀히 들여다 보면 작은 선회 구간이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내가 가는 방향은 올곧게 뻗어 있다. 내가 믿는 나의 모습들, 지켜내는 신념들, 원하는 지향점을 항상 아로새기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루이틀 날씨 변화가 있어도 봄은 봄이고, 곧이어 여름이 이어지는 계절 변화가 당연하듯, 우리네 인생에 '변화'는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그저 내가 정한 나만의 방향으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색다른 삶으로,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다. 인생에 전환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항상 전환점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피동적인 삶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신기한 것은 아이의 성장이다. 누워서 꼼짝도 못 하던 아기는 뒤집기, 배밀이, 앉기, 서기, 걷기 등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변화를 겪는다. 우리에겐 너무나 간단한 일이지만, 아무것도 못하던 아기가 하나의 동작을 익혀 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한 관문을 통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아이는 각 단계에서 대근육, 소근육이 발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줄 알게 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그땐 그랬지..


하지만 이러한 아기의 성장을 '전환'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 누구도 아기에게 뒤집기를 먼저 하고, 그다음 배밀이를 하라고 일러주지 않았지만, 모든 아기들이 알아서 그 단계를 거쳐간다.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성장의 단계들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자연스러운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하듯, 우리도 각자의 단계에 맞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 성장이 때로는 생활 전반을 뒤집는 큰 '변화'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거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전환'은 아니다. 인생의 계절 흐름에 맞게, 각자의 방향으로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전환점을 기다리지 않겠다. 내 인생은 이미 나의 계절 속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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