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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Feb 24. 2021

이래서 가족이구나

[가족이라는 세계]가족의 무엇이 나를 만들었는가


어릴 적 나는 언니가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활달하고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달리 언니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잘 나누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칭찬을 받곤 했다. 내 기준에 언니는 완벽한 외향형 인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언니는 여전히 사랑받는 사람이지만 근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내향형 인간이었다. 평생 나랑은 다른 성질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나라는 사람과 생각 프로세스 자체가 똑같았다.

먼 옛날 언니와 여행을 갔을 때. 여행 스타일도 완벽히 일치한다.

다만 언니가 똑똑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항상 공부머리로 언니를 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가 성적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고 조기졸업에 취업까지 척척 해내는 걸 보면서 성적과 일머리는 다르다는 것, 공부를 잘하는 것과 영리한 것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도. 혹자는 언니의 성과를 두고 ‘운이 좋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업적은 오롯이 언니의 능력치다. 나는 언니가 스스로 무언가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언니가 밟았던 길을 똑같이 걷고 싶었다. 언니가 대학시절 학교 신문사에서 부국장을 하는 것을 보고 나 또한 학교 신문사에 들어갔다. 또 의도치 않게 나도 부국장까지 하게 됐다. 언니가 국회와 시청에서 홍보담당자로서 소셜마케팅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인턴부터 취업까지 소셜마케팅 분야로 하게 됐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면 할머니와 닮았단 이야기를 왕왕 들었다. 할머니의 말투, 자세, 생각까지 많은 것이 나의 특성이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할미일 정도다. 지금도 혼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있거나 앉아있는 모양새를 보면 문득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나의 고집이 센 성격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고집쟁이가 되었다.


“아빠 닮아서 그래”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얼굴이든 성격이든 운동 신경이든 나의 많은 부분이 아빠와 똑 닮았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아빠에겐 동질감이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면 내심 아빠 편을 들게 되고, ‘아빠는 왜 저럴까’ 싶다가도 ‘그래서 그랬겠구나’ 지레짐작으로 동감을 하곤 한다. 어릴 적 아빠는 엄마가 잔소리할 때 내 편을 들어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대학 진학 즈음해서는 아빠에게 논술 과외를 받기 시작하면서 내 학점까지 꼼꼼히 챙겨 주었다. 내 대학 생활과 취업 준비 기간은 아빠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애를 쓴 세월이다.


내가 보는 엄마는 똑 부러지고 부지런하고 악착같이 무언가를 성공해 내는 사람이다.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 또,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 엄마는 글을 쓰고, 그 글을 남들 앞에서 공유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맏이로 태어나 가족 행사에 항상 리더 역할을 하는 것까지 내가 두려워하고 못 하는 것을 언제나 해낸다.


어른이 되어보니, 내 성격과 엄마 성격이 닮은 구석이 많았다. 첫 번째, 지나치게 모범생 같은 면. 엄마는 몇 년간 투병 생활을 했고, 그간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사항들을 철저히 지켜왔다. 모든 약은 알람을 맞춰 정확한 시간에 복용하는데, 영화 보는 중이나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쩜 저럴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을 돌이켜 보면 일탈 한 번 없는 모범생다운 삶을 살았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인생에 주어진 과제들을 착실하게 수행하려 노력해왔다.


두 번째, 한 번 꽂히면 즉시 시행하는 추진력과 계획적인 면이다. '폭주 기관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나는 해야겠다 결심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엄마 역시 본인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그것을 끝까지 해낸다. 가족 행사를 준비할 때는 물론이고, 주말에 우리가 고향 집으로 내려가면 무엇을 할지 엄마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한다. 어릴 적엔 엄마 말대로 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계획이 있고 그대로 움직이는 게 나에게 잘 맞는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나의 공통점은 상처를 받으면 그 순간에는 쿨한 척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없었던 일로 생각하면서 그 순간 금방 회복이 되지만 결국 마음속에는 상처로 남아 먼 훗날 다시 꺼내어보며 마음 쓴다. 그리고 그걸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화가 난 순간에는 내 감정을 표출하더라도, 뒤늦게까지 마음 아파하는 내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많은 면을 나도 모르게 체득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강해 보였던 엄마에게서 약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엄마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 성격의 토대는 할머니를, 내 외모는 아빠를, 내 삶의 태도는 엄마를, 방향성은 언니를 닮아가고 따라간다. 나의 성정(性情)도 가족에게서 왔지만, 가족들의 조각조각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또 이제는 내 가족을 꾸리고 내 자식을 낳게 되면서, 내가 그러했듯 아이에게 나의 속성들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물려받고, 엄마가 될 나에게 물려준 것처럼. 삶이 별 것일까. 서로를 닮고 서로에게 영향으로 끼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인간의 삶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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