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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Feb 26. 2021

아빠의 손

[가족이라는 세계] 근심 많은 부녀 이야기


나는 아빠의 작고 통통하고 촉촉한 손을 좋아한다. 내가 손을 잡으면 아빠도 있는 힘껏 손을 잡아준다. 겁이 많았던 나는 아빠의 손이 항상 잡고 싶었지만, 아빠는 내 손을 잡아줄 때도 잡아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어두운 밤길이 무서워 아빠가 나를 데리러 나와 주길 원했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용감하게 키우겠다며 베란다에 서서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게 무서웠지만 베란다에서 지켜봐 주는 아빠의 그림자에 의존해 집에 뛰어가곤 했다.


이제는 어두운 길도 혼자 잘 걷지만 아빠랑 같이 걷는 게 좋아서 혼자 버스를 타고 속초에 갈 때면 종종 데리러 나오라고 아빠에게 부탁한다. 그러면 아빠는 느린 걸음으로 매번 데리러 나와 주었다. 


혼자 걸어야 할 때는 멀찍이서,
하지만 언제나 눈이 닿는 곳에서.
혼자 걸을 수 있을 때는 곁에서,
언제든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

대학 입시 때였다. 나는 수시 전형으로 몇 개의 대학교를 썼고, 논술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야 했다. 속초에서 시내버스조차 잘 타지 않았던 내게, 서울의 지하철은 너무나 낯설었다. 시험의 긴장감만으로도 어지러운데 지하철 인파는 나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지하철을 타면 잘못된 방향일까 봐 잔뜩 긴장해야 했다. 피곤함에 지쳐 아빠에게 기대어 짧게 잠을 청했다. 혼자였다면 누리지 못 할 쪽잠이 달콤했다. 나의 긴장감이 한없이 풀리는 순간. 일어났을 때의 몽롱함이 기분 좋았다.


대학에서 수시 첫 시험을 보고 나온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빠 얼굴을 보자마자 “아빠,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렇게 시험을 못 본 것이 아니었는데, 나 때문에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와 시험 보는 내내 마음 졸이며 나를 기다렸을 아빠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 것이다.


다음으로 간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고 나오니 아빠의 얼굴이 갓 까놓은 삶은 달걀처럼 말간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아빠 말에 의하면 시험 보는 동안 근처 사우나에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시험을 친 뒤 녹초가 되어 나오고, 아빠는 그 사이 깨끗이 새 사람이 되어 만나는 기분이란.


나는 그렇게 학교 두 곳을 합격했다. 나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아빠는 말했다. “교수들이 문제가 있거나 다른 애들이 멍청한 거 아니냐” 함께 서울을 오가며 그 누구보다 합격을 바랐을 것인데도 파안대소하며 짓궂은 말을 내뱉는 아빠였다.


언니가 학교에 합격했을 때 아빠는 ‘둘째 대학은 어떡하지’라고 생각했고, 언니가 어린 나이에 취업했을 때도 ‘둘째 취업은 잘 될까’ 걱정했다고 한다. 엄마가 교장이 되고, 언니와 나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 긴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 때도 아빠는 마냥 행복해하지 않았다. 내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도, 그 누구보다 기뻐하면서도 내 승진을 걱정하고 둘째는 언제 낳을 것인지 물었다.


내가 본 아빠는 성공의 기준이 있고, 자신이 그 기준을 넘지 못할까 봐 늘 두려워했다. 딸들이 자신이 넘어진 곳에서 똑같이 넘어질까 항상 걱정한다. 내 결혼식 날, 날 안으며 ‘이제 다 보냈다!’ 후련하게 웃던 아빠의 얼굴, 내 등을 쓰다듬던 아빠의 손길이 기억난다. 아기의 태동을 느껴보려 내 배를 쓰다듬던 아빠의 작고 통통하며, 촉촉한 손길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항상 걱정 많고, 신중하고, 고집 있는 사람. 평생 근심 걱정 속에 살더라도 행복한 그 순간만큼은 촉촉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줄 사람. 내가 아빠의 걱정거리 중 하나인 것이 내 걱정이다. 이 조차 우리는 너무나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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