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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Feb 27. 2021

엄마의 배

[가족이라는 세계]딸들에게 엄마의 의미란


엄마의 배에는 20대 때부터 시작된 무수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다. 엄마의 배에 난 수술 자국들은 20대 중반, 언니와 나를 제왕절개로 낳으면서 남겨진 두 번의 기록, 신장 수술로 새겨진 네 번의 기록들이다. 세월이 지나 옅어진 흔적들도 있지만 엄마의 작고 여린 몸에는 여전히 기록들이 남아있다.


‘엄마’라고 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 내가 엄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정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엄마는 나의 보호자라기보다는 롤모델에 가깝다. 언니는 항상 바빴던 엄마가 미울 때도 있었다고 하지만, 난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언니는 대학시절 집을 떠나면서 엄마를 ‘보고 싶은 대상’이라 했지만, 나에게는 ‘되고 싶은 존재’ 혹은 '되어야하는 존재'에 가까웠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를 따라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끔찍이도 싫다는 걸 깨달으면서 결국 고3 때 진로를 바꿨지만. 


어릴 적 나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으면 할머니가 좋다고 답하는 아이였다. 교직 생활, 사회 생활로 바빴던 엄마는 주로 훈육 담당이었다.  교사였던 엄마는 나에게도 교사였다. 주말마다 교회가 끝나면 도서관에 언니와 나를 데려가 온 가족의 대여권을 이용해 10권이 넘는 책을 잔뜩 빌려와 읽게 하곤 했다. 잘못했을 때 야무진 손길로 등을 맞았던 기억도 있다. 엄마는 ‘내 편이자 보호자’보다는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존재’였다. 감정적 교류보다는 가르침을 받는 존재였고 혼날까 무서운 존재였다.



엄마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엄마의 간호는 내가 맡겠다고 했다. 엄마의 간호는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엄마의 배에 굵게 새겨진 상처를 마주하는 일은 사실 힘든 일이었다. 엄마 배에 괴물 입이라도 달린 것처럼 끔찍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 상처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신장을 이식해 준 이모의 숭고한 마음,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건강하게 복귀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의 상처는 아파서 생긴 게 아니라 아픈 몸을 고치기 위한 상처라고.


언니는 내가 엄마를 간호하는 행위가 엄마의 첫 수술 때 함께 있지 못 한 죄책감 때문이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약해진 모습의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엄마에겐 쉴 이유가 없었다. 엄마가 교장직을 달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기도 했고, 엄마는 교직생활의 종착지에 완벽한 모습으로 완주하길 바랬다. 나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 보다, 엄마의 삶에 나를 투영하고자 했다. 엄마의 미래가 곧 나의 미래라 여겼다. 엄마가 성공적으로 은퇴를 하는 것이 내 미래에 희망을 품는 일이었다.


엄마의 수술 직후, 엄마는 병원을 자주 가야 해서 나의 신혼집에서 한 달 정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엄마는 면역력이 낮은 상태라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으로 엄마의 심심함을 달래주려 했다. 30년이 넘는 교직생활 중 처음으로 엄마의 쉬는 모습을 보았다. 집에만 있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었다. 침대에 같이 누워 엄마의 신혼 시절 이야기를 들은 날도 있었다.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던 그 한 달 동안 엄마는 어느덧 ‘훈육자’에서 ‘애틋한 우리 엄마’가 되어갔다. 내가 지은 가족의 수식어도 언젠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가 내 신혼집에서 떠나는 마지막 날, 엄마는 “인생의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되어주어 고맙다”라고 했다. 그 후 엄마는 착실하게 몸을 회복하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나는 엄마 학교에 놀러 가는 게 참 좋다. 아기자기한 교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엄마가 학교 구석구석 자신의 애정을 담아내는 모습, 평생의 노력을 담아 교장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을 보는 게 가장 좋다.


나는 나의 딸을 바라보는 엄마를 바라보는 게 참 좋다. 내가 아기였을 때도 저렇게 나를 바라보았을까?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엄격하고 엄정한 모습의 엄마가 아닌 한없이 사랑만을 주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엄마와 나란히 앉아 엄마와 나의 고민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그렇게 무서웠고, 그렇게 멋있어보였던 엄마는 결국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음 마주하는 시간. 결국 나의 모든 생각과 성격이 엄마에게서 왔음을 깨닫는 시간이라서.




엄마의 배에는 엄마의 역사가 남겨져 있다. 그 역사에 내가 동참했고, 그 기록 속에 내가 있다. 나를 낳으면서 생긴 상처부터 이식 수술 이후 회복하기까지, 엄마는 숱한 상처를 자신의 몸에 새겨갔다.


나는 엄마에게서 나의 미래를 본다.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낳으며 배에 처음으로 상처를 만들게 될 것이고, 그 이후로도 많은 상처를 안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지 않다. 그것은 나의 역사가 될 것이고, 가족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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