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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르방 Dec 26. 2022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의 공부 - 최재천, 안희경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알면 사랑한다. 그것이 공부의 이유다.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 ‘알쓸인잡’에서 방탄소년단의 RM이 ‘자기 자신을 어떠한 인간으로 정의하는 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배움을 욕망하는 인간이다.


대답을 듣고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궁금증이 생겼다. 왜 인간은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것일까. 나에게 더욱 궁금했던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것일까?’였다. 엔지니어로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두근거릴 때도 있지만 ‘또 공부해야 해? 내가 진짜 원하는 공부야?’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내 주변의 엔지니어들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공부한다. 왜 공부하는 것일까.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답변은 더 이상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아마 공부와 관련된 막연한 스트레스는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안 했다. 하지만 한국의 여느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이 수능을 준비했고 대입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아이러니하게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마저 스트레스를 받는 교육이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다. 언젠가 고등학생 때 친구가 했던 무심히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입시 진짜 이상하지 않아? 교육부는 뭐 하는 거야 진짜. 어른들은 왜 이 수능입시제도의 문제를 모르지?

어른이 되면 어른의 문제가 생기니까 고등학교 입시제도는 뒷전인거지. 신경 쓰겠냐?

맞다. 모두가 한번쯤은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한번쯤은 의심한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한국 교육제도보다 당장 나만의 문제가 더 급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한 적이 없다. 이번에 최재천교수님과 저널리스트 안희경작가님의 대담형식의 <<최재천의 공부>>를 통해 공부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최재천 교수님께서 미국 유학시절 공부하셨던 경험담들이 묘하게 나의 공부의지를 자극했다.


[1부 – 공부의 뿌리]

우리가 왜 그렇게 마스크를 성실히 쓰느냐는 설문조사에 우리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답을 했어요.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육과정은 과목별로 가르친다.
제가 미국에 살면서 알게 된 게 있어요. 그들은 끝까지 토론하고 함의를 보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오래 토론하고 실행단계에서 무지 시간을 씁니다.
제가 가장 많이 쓰는 문구가 ‘공부하는 줄 몰랐는데 배웠더라.’ 예요.
아이를 가르쳐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세상을 보고 습득하도록 어른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그것이 올바른 교육입니다.
저는 국어 성적이 95점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제 답을 국어 선생님이 틀렸다고 채점하시면, 무슨 근거로 틀렸다고 하시냐고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질문했어요.
‘미국에서 죽으면 죽었지, 공부를 마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한 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그분이 가끔 틀리시면 지적을 했어요. 그러면 모든 학생들이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학교에는 수학 천재가 교수를 지적했다는 소문이 퍼졌고요.
그 후론 미국생활이 편해졌어요. 제가 뭘 잘못해도 ‘쟤는 알고 있는데 영어로 표현을 못하는 거다. 쟤는 천재다.’하곤 넘어갔어요.
저는 당시 30대 초였는데 스무 살인 대학생들과 같이 배웠죠.
한 아이가 ‘우리가 풀어야 하는 것을 x라고 두자.’라고 하면 다른 아이가 “x로 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뭐지? A와 b라고 할까?”라고 생각을 나눠요. 이 과정이 수학입니다. 상황을 관찰하고 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에 요소들을 부여해서 관계를 찾아가는 겁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나는 공부를 왜 했을까. 아마 당장 눈앞에 시험들을 통과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다. 학생 때는 대학에 갔어야 했고 대학 이후 경제적 독립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는 어쩌면 수동적으로 환경에 나를 맞춰서 공부했다. 나를 위한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좀 더 시간을 들여 생각해 봐야겠다.


[2부 – 공부의 시간]

제가 실수를 했을 때 미국에서는 ‘너도 이유가 나름 있었겠구나.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한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학자들이 벽돌을 착착 쌓아가듯 빈틈없이 공부하셨을까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학문하면 생애에 못 끝냅니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들은 어느 단계까진 도달하지만 더 나아가진 못하더라고요.’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서 일해요.
미국에서는 이유를 묻지 않고 양해해주는 일의 1순위가 자녀 등하교이고, 2순위가 자녀의 병원진료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고독’과 ‘고립’을 혼동합니다. ‘고독’이란 ‘자발적 홀로 있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 홀로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고요. 내가 나와 온전히 함께하면서 내 안에 스며든 세상의 요소도 바라보도록 안내하지요. 혼자 있는 시간은 세상과 연결된 적극적 나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시간이 아닐까요?
행복하신가요?
행복하죠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
혼자 있을 때요… 저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에요. 혼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있잖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감사히 생각하며 공부를 해야겠다. 사실 요즘 혼자서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벅차다. 괜히 답 없는 문제의 파도를 헤엄치는 것 같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너무 필요하다는 순간들이다. 끊임없이 이것저것 엉성하게라도 공부해보고 실수하고 나의 존재를 깨달아가야겠다.


[3부 – 공부의 양분]

‘너의 결정적 약점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결론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뜸을 들인다는 것이다. 과학적 글쓰기는 결론부터 써야 한다.’
문학적 글쓰기와 과학적 글쓰기가 충돌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피터에게 가장 먼저 배운 영어 표현이자 ‘삶의 수업’이 “You never know until you try”예요. 미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이라고 설명했죠
아닐 것 같은데요, 저는 1999년에 <<개미제국의 발견>>이란 책을 보고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하버드 대학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윌슨 교수님도 몰랐고요. 오로지 개미에 끌려 책을 읽고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다음에 글과 방송으로 만난 선생님은 늘 ‘최재천’이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국에서 가르칠 때는 지금 요구하는 것의 두 배를 요구했고, 미국 대학생들은 한 학기에 내 과목 같은 수업을 다섯 개 듣는다.” 미국의 좀 괜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잠이 부족할 정도로 공부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합니다.
그렇죠. 행동의 목적에도 맞고 우리말의 아름다움도 살려서 용어를 다듬었죠. 그래도 잎꾼개미로 번역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럼 책을 안 내겠다고 버티면서 추진했습니다.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 눈만 나빠집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말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버락오바마도 그렇고, 다들 자기 언어를 사용합니다. 중요한 연설문을 봐도 원고를 읽었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자기가 관여한 내용이 눈에 보이죠. 결국 말을 잘하려면 글쓰기를 잘해야 하니 평소에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해야 합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나답게’를 ‘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시킨다’라고 여겼는데, 선생님의 답에서 핵심은 ‘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읽기, 쓰기, 말하기를 할 때는 자연스레 나를 드러내야 진정성이 담기면서 상대에게 깊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나를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까짓것 해보자. 하다 안 되면 할 수 없지.’ “해보죠”라고 말하고서 일을 맡으면 열심히 해서 그런대로 잘했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죠. 어떤 분이 제 미국 생활을 보고 인생 세탁이라 그러던데, 그 인생세탁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실수하면 사과하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실수를 실수로 받아준 환경을 경험하면서 떨림을 극복할 수 있었죠.
더 중요한 건 재미있더라고요. 동물에 대해서 배우니 좋아서 더 잘했던 거죠. 제가 저에게 “최재천, 너 이런 애였어?”라고 물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안 할 수 있나? 가장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치를 뽑겠다’라고 효율만 생각했습니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인간은 왜 잠을 자야 할까? 나는 할 게 너무 많고 읽을게 너무 많은데 왜 이렇게 피곤하고 졸릴까?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라는 이상한 말을 제 마음속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새벽 2~3시인데도 공부를 끝내기 싫어서 더 읽고 더 찾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그래도 조금 자 둬야 내일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새벽 3시에 기숙사로 갔어요. 아침 8시에 다시 학교에 왔습니다. 그러니 잘할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 교육이 미국 교육에 비해 좋은 점이 참 많아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이 바로,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훈련을 거의 못 받고 정규교육과정을 빠져나간다는 점입니다. 제 예상으로 곧 바뀔 겁니다.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잖아요. 과연 언제까지 고등학생들의 정치토론을 막을 수 있을 까요? 못 막습니다.
다윈은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보여줬어요. ‘내가 중요하다. 내가 변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심이다. 내가 그 주체다.’ 바로 이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신 분이에요. 서양의 2000년 사고 체계를 뒤집어 버린 사상가입니다.

우와, 사실 좀 부럽다.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공부라니! 나도 나만의 재밌는 공부를 악착같이 찾아야지.


[4장 – 공부의 성장]

눈물이 날 정도로 북받친다는 건 가슴으로 느꼈고, 그만큼 공감력이 확대되면서 자기가 사는 세상이 넓어졌다는 의미일 텐데요. 사회도 연대감이 강화되니 공익적으로 좋고요. 선생님 말씀 속에서 ‘창의력이란 온 마음을 쏟으며 길을 모색하는 경험에서 나온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이란 ‘자기 일처럼 몰두하고 부딪쳐나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일 텐데요. 하지만 우리 현실은 조바심이 이는 구조입니다. ‘시험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 낭비가 아닐까?’ ‘경험하기’보다는 학력을 높이는 진학이나 시험 준비로 선회합니다. 진짜 공부는 경험하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성적을 잘 받은 학생들은 대체로 자기 관리에 충실합니다. 성실하기는 해요. 하지만 창의성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한 번가는 인생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죠. 열심히 하다 보면 되기도 해요.
제가 <<과학자의 서재>>라는 책에서 ‘세상 경험 중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모든 경험은 언젠가는 쓸모가 생긴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는 딴짓을 많이 하면서 살았어요.
미술가나 과학자는 현재 인식의 꼭짓점을 끌고 사과의 한계를 돌파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자극받으실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돌이켜보았을 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며 지나온 시간이 결국 나를 성장시켰구나’하는 경험이 있으신지요? 생계를 위해 혹은 상황에 떠밀려, 자신의 계획을 유보한 채 기운 쳐져 있는 이들에게 들려줄 말씀이 있다면요.
저는 어느 위치까지 올라가겠다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고 계획하며 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생물학도 제가 목표로 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떠밀려 넘어지며 하게 된 분야잖아요. 그저 펼쳐진 멍석 위에서 그나마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저를 불러줬어요.
그렇죠. 여기 이 책이 <<동물 행동학 백과사전>> 초판인데 2010년에 나왔습니다. 전부 백인이잖아요. 완벽하게 백인입니다. 저만 유색인종이죠. 그때 제가 동물 행동학에서 사회행동 분야 책임 편집자였어요.
저는 말씀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은 당장 할 일에 끌려간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마음을 다해서 몰두했을 때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날아가는 경험이란 없다.
우리나라 모든 학생이 몸을 쓰도록 하려면 몸을 움직이는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비엔나를 손꼽습니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판단은 차가 없기 때문이래요.

가끔 업계 탑티어에 있는 사람들이 ‘나는 목표가 확실하진 않았었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면 뜬금없이 용기가 생긴다. 물론 그분들은 목표가 확실하지 않았음에도 매일을 성실히 살고 최선을 다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하셨겠지! 그래도 가끔 '내가 어쩌면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없고 제너럴리스트라면 어쩌지? 나는 나만의 스페셜리티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위와 같은 말을 듣게 되면, 아직 충분히 나도 시간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이 불확실함 속에서 이것저것 해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뾰족함이 길러지겠지.


[5장 – 공부의 변화]

마음이 맞는 사람만 페이스북 친구로 삼고, 마음이 맞는 사람이 보내준 글만 읽고, 정치 성향에 맞는 신문만 읽고, 한쪽으로 쏠려서 정보를 접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기성세대는 안 그랬을까요? 지금이 옛날보다 더 편향적일까요? 인터넷 알고리즘이 편향성을 부추기긴 하지만,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젊은 친구들이 처음부터 편파적으로 ‘저쪽 건 전혀 안 볼 거야’라고 작심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이것저것 뒤지면서 나름대로 거르는 과정에서 전체를 파악합니다. 기성세대보다 더 넓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폰 프리슈 교수님이 숨을 거두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동물도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나도 알지 않는가? 우리 과학자의 임무는 일반인도 이를 알 수 있게 객관적 방법론을 찾는 것일세.”
이젠 하등동물도 생각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동물의 새끼는 엄마의 행동결정을 물려받는 건 아닙니다. 따로 훈련받아야 하죠. 그런데 인간만은 유일하게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을 글과 말을 통해 배워서 하잖아요. 우리는 매 세대가 원점으로 돌아가 똑같은 데서 출발하지 않고 앞선 세대가 멈춘 곳까지 출발선을 들고 가서 거기서부터 나아갑니다. 지구의 어떤 생물도 인간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어요. 학자들은 가끔 외계생물에 대해 논쟁하는데요, 그들에게 지식을 축적할 능력이 없다면 구태여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저는 말해요.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질투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따돌리지요. 충분히 아는 사이에선 대개 그런 짓을 못하잖아요.
알아가면서 오해가 풀리는 경험을 다들 하죠.
그렇죠. 자연에 대해서도 알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연을 도저히 해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있어요. 20대 초에 배운 알량한 전공지식으로 95세까지 우려먹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감히 알기도 전에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오만함을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알게 되면 정말 마음이 쓰이고 이해하고 싶고 미워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다. 마음을 열고 살아야겠다.


[6부 – 공부의 활력]

제가 7년 동안 튜터를 맡았는데요. 튜터가 하는 일은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입니다. 제가 맡은 아이가 열네 명정도인데, 수시로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 아이의 상황을 살폈어요.
대개는 이야기하면서 많이 풀려요. 저는 기숙사 튜터를 하면서 들어주기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7년 동안 학생들을 보살폈다기보다는 제가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받았죠. 나중에 교수가 되어 큰 도움이 됐어요.
요즘 청년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악착같이 찾아봐라’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을 왜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삽니까? 우리는 눈만 뜨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쭈그리고 앉아있지 말고,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면서 찾아야 합니다. 무언가 관심이 가는 일이 보이면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찾아가 보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저는 찾아가는 걸 잘했어요. 아나운서를 해볼까 해서 대학생 때 봉두완 아나운서를 찾아갔습니다. 봉두완 아나운서가 점심을 사주셨어요. 또, 집에서 외교관을 하면 좋겠다고 하기에 대사관에도 찾아갔습니다. 외교관을 무엇을 하며 사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어서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오신 김계중 교수님이 영어로 곤충학 강의를 개설하셨어요. 영어를 좋아했던 만큼 그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런 저를 좋게 보셔서 미국으로 돌아가실 때 저에게 유학을 권유하셨어요. … 얼마 후에 하루살이 연구의 대가인 조지에드먼즈 교수님이 한국에 오셨어요. … 에드먼즈 교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교수님처럼 살 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 저는 교수님이 알려주신 대로 전력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건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달리면 됩니다. 제가 정확히 그렇게 했어요. 한 10년쯤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었는데,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똥물학과 학생으로 우울한 대학생활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좋을 끼?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죠.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데는 바로 그 존중이 바탕으로 자리 잡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각자가 뿜어내는 가치가 보입니다.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다양성의 가치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네, 저마다의 삶 속에 저마다의 공부가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난 굉장히 무모한 성격이다. 앞뒤 따지지 않고 궁금하면 우선 도전한다. 미국에서 엔지니어들끼리 모여 서로 링크드인 계정을 주고받으며 커리어 고민 상담하는 모임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미국사람들은 어떻게 직장을 구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나는 앞으로도 개발자가 하고 싶은지 고민이야. 너희 회사 직무이름이 너무 모호하고 비슷한데, 이런 정보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답변은 명쾌했다. “직접 링크드인에 관심직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연락해!” 그렇다. 직접 연락하고 구체적으로 질문할 것. 어린 시절부터 대담했던 교수님의 일화들을 읽으면서 미국인들의 조언이 생각났다. 어쩌면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 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 구독자 ‘재미’로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항상 재밌게 들었었다. 언제나 교수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다. 그리고 교수님의 용감함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진 매력은 안희경 작가님의 질문에서 나온다고 느꼈다. '어떻게 저렇게 질문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공감하고 꼬리질문을 던지신다. 그리고 더 이야기하게끔 유도하는 질문들이 너무 멋지다고 느꼈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나에게 공부의 의미를 생각해 봤다. 지금 나에게 공부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부수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배움이다. 회사에서의 공부를 통해서 나는 새로운 업무 기회를 얻고있다. 나에게 공부는 새로운 업무를 향한 기회의 발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업무를 넘어서서 일상생활에서도 더 많은 경험을 해서 나와 다른 존재들을 알아가며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 알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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