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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르방 Apr 08. 2023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사피엔스 - 유발하라리

호모 사피엔스! 오늘날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의 종을 의미한다. 

Homo is the Latin word for 'human' or 'man' and sapiens is derived from a Latin word that means 'wise'.

어원을 살펴보면 호모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을 의미한다. 뻔뻔스럽게도 우리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생태계의 최고 권력자로서 행동한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지혜롭다는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하게 살아남게 된 이유를 소개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가지 큰 주제를 통합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아래와 같다.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믿음체계,
즉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를 따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Part One. 인지혁명 The Cognitive Revolution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높은 지적능력

직립보행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언어


과연 지적능력이 뛰어날수록 진화과정에 도움이 되었는가? 인류의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상태일 때 기준으로 전체에너지의 25퍼센트나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근육이 퇴화한 동물이라는 신체적 제약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발달한 지적능력이 반드시 인간의 특성의 강점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Homo sapiens is primarily a social animal. Social cooperation is our key for survival and reproduction. 

그렇다면 직립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유익했을까? 직립보행으로 인간의 손은 새로운 기능을 발휘한다. 손가락의 섬세한 근육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끔 진화했다. 하지만 직립보행의 대가로 여성은 큰 비용을 치른다. 똑바로 서서 걸으려면 엉덩이가 좁아지며 산도가 좁아지는데 이는 인간 여성에게 주요한 위험이 되었다. 그 결과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호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고, 이에 따라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진화에서 선호된 것은 이웃 간의 도움이고 인간의 사회성은 발달했다. 


세 번째 특징으로 인간은 불을 사용할 수 있다. 불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음식을 익히는 일이었다. 익히는 요리법으로 인간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창자가 짧아졌다. 이렇게 불을 길들이며 인간은 신체적 제약을 극복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This ability to speak about fictions is the most unique feature of Sapiens language. 
The secret was probably the appearance of fiction. Large numbers of strangers can cooperate successfully by believing in common myths. 
Ever since the Cognitive Revolution, Sapiens has thus been living in a dual reality. On the one hand, the objective reality of rivers, trees and lions; and on the other hand, the imagined reality of gods, nations and corporations. As time went by, the imagined reality became ever more powerful, so that today the very survival of rivers, trees and lions depends on the grace of imagined entities such as gods, nations and corporations. 
The immense diversity of imagined realities that Sapiens invented, and the resulting diversity of behaviour patterns, are the main components of what we call ‘cultures’. Once cultures appeared, they never ceased to change and develop, and these unstoppable alterations are what we call ‘history’.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언어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다. 이를 '뒷담화이론(The gossip theory)'이라고 하고 협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나 우리 언어의 특이성은 허구를 말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 풍부한 상상혁은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국가, 기업, 인권 등의 가상의 개념이다. 이 가상의 실재는 문화를 만들었고, 끊임없는 문화의 변화는 역사를 만들었다.


직립보행이 사회의 결속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리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사피엔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인 언어가 '세상에 대한 정보 공유'등의 고상한 의미가 있기보다는 뒷담화 이론으로서 기능을 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허구의 이야기들이 결국 사피엔스들을 협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말의 힘을 느낀다. 작가는 당연히 맞다고 진리라고 생각한 부분에 반론을 제기하며 독자 스스로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Part Two. 농업혁명 The Agricultural Revolution
 Moreover, the new agricultural tasks demanded so much time that people were forced to settle permanently next to their wheat fields. This completely changed their way of life. We did not domesticate wheat. It domesticated us. The word ‘domesticate’ comes from the Latin domus, which means ‘house’. Who’s the one living in a house? Not the wheat. It’s the Sapiens. 
Maybe it wasn’t the search for an easier life that brought about the transformation. Maybe Sapiens had other aspirations, and were consciously willing to make their lives harder in order to achieve them. 

수렵채집의 시기에서 농업혁명으로 넘어가며 인류는 안락한 새 시대를 맞이하기는커녕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이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고 농부는 수렵채집인들보다 열심히 일했다. 이로써 사피엔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While agricultural space shrank, agricultural time expanded. Foragers usually didn’t waste much time thinking about next week or next month. Farmers sailed in their imagination years and decades into the future.               
Consequently, from the very advent of agriculture, worries about the future became major players in the theatre of the human mind.                  
The stress of farming had far-reaching consequences. It was the foundation of large-scale political and social systems. Sadly, the diligent peasants almost never achieved the future economic security they so craved through their hard work in the present. Everywhere, rulers and elites sprang up, living off the peasants’ surplus food and leaving them with only a bare subsistence.   
These forfeited food surpluses fuelled politics, wars, art and philosophy. They built palaces, forts, monuments and temples. Until the late modern era, more than 90 per cent of humans were peasants who rose each morning to till the land by the sweat of their brows. The extra they produced fed the tiny minority of elites – kings, government officials, soldiers, priests, artists and thinkers – who fill the history books. History is something that very few people have been doing while everyone else was ploughing fields and carrying water buckets. 

수렵채집인들과 다르게 농경시대에는 농부들은 미래에 대한 상상의 항해를 떠났다. 농업혁명덕에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생산의 계절적 사이클뿐 아니라 농업자체의 근본적 불확실성에도 뿌리를 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농업의 등장과 함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인간의 마음에 주요하게 자리 잡았다. 농사 스트레스는 대규모 정치사회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열심히 일했음에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고 지배자와 엘리트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농부에게는 연명할 수 있는 수준의 식량을 남겨준다. 이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된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들의 역사이다.


Let us try to translate the most famous line of the Americ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to biological terms: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According to the science of biology, people were not created’. They have evolved. And they certainly did not evolve to be ‘equal’. The idea of equality is inextricably intertwined with the idea of creation. The Americans got the idea of equality from Christianity, which argues that every person has a divinely created soul, and that all souls are equal before God. However, if we do not believe in the Christian myths about God, creation and souls, what does it mean that all people are ‘equal’? Evolution is based on difference, not on equality. Every person carries a somewhat different genetic code, and is exposed from birth to different environmental influences. This leads to the development of different  qualities that carry with them different chances of survival. ‘Created equal’ should therefore be translated into ‘evolved differently’. 

there are no such things as rights in biology. There are only organs, abilities and characteristics. 

우리는 사람을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하는 것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 또한 신화다.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사람들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There is no way out of the imagined order. When we break down our prison walls and run towards freedom, we are in fact running into the more spacious exercise yard of a bigger prison. 
There is No Justice in History 
Unfortunately, complex human societies seem to require imagined hierarchies and unjust discrimination. Of course not all hierarchies are morally identical, and some societies suffered from more extreme types of discrimination than others, yet scholars know of no large society that has been able to dispense with discrimination altogether.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이 알기로 대규모 사회치고 차별을 전부 없앤 곳은 이제까지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사회의 구성원들을 가상의 범주에 따라 분류하여 사회에 질서를 창조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위계질서는 중요한 기능을 하나 수행한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끼리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One hierarchy, however, has been of supreme importance in all known human societies: the hierarchy of gender. People everywhere have divided themselves into men and women. And almost everywhere men have got the better deal, at least since the Agricultural Revolution. 


농업의 시작은 우리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사건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이를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나빴던 것일 까? 작가는 역사적 사건들의 옳고 그름, 좋은 점, 나쁜 점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농업혁명은 위계질서를 처음으로 등장시켰고, 이에 따라 불평등을 야기한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계질서는 젠더 위계질서다.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농업혁명 이후로 가치 있게 여겨진 원인들을 지적한다. 실제로는 그 원인이란 것은 실체가 없다. 작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념에 질문한다. 그는 근력, 남성의 공격성/폭력성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생존전략이 달랐다는 등의 일반적인 생각들의 오류를 지적한다. 결국 이 위계질서에는 명백한 답이 없다. 젠더에 대한 관념 역시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젠더의 위계질서를 다루는 이 챕터의 소제목이 '역사에 정의는 없다'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상의 질서의 뿌리는 결국 정의롭지 않고 근거가 없다. 불평등은 피할 수 없지만 근거 없는 신화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불평등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불평등에 굴복할 필요도 없다.


Part Three. 인류의 통합 The Unification of Humankind
We still talk a lot about ‘authentic’ cultures, but if by authentic’ we mean something that developed independently, and that consists of ancient local traditions free of external influences, then there are no authentic cultures left on earth. Over the last few centuries, all cultures were changed almost beyond recognition by a flood of global influences. 

우리는 '고유'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온전한 고유문화는 없다. 인류의 역사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보편적 질서를 공유하며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 보편적 질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화폐질서

제국의 질서

종교적 질서

이 책을 읽는 한국인 독자로서 제국주의에 대한 논의들은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다양한 예시를 들어주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가장 대표적인 제국주의는 일본제국주의였다. 제국의 주기표에 의하면 제국문화가 구축되고 피지배민족에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온다. 제국을 설립한 자들이 지배력을 잃고도 제국의 문화는 계속 꽃피고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지나고도 전통문화를 수호했고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폭압적이었던 식민정책을 여전히 기억하기에 제국의 질서의 보편성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종교적 질서에 대한 챕터는 아주 흥미로웠다. '종교'라는 개념은 신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인간의 믿음체계 전체를 아우른다. 즉 자본주의, 소비지상주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인본주의등도 결국 상상의 질서일 뿐이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만이 종교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자본주의와 평등, 인권 또한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So why study history? Unlike physics or economics, history is not a means for making accurate predictions. We study history not to know the future but to widen our horizons, to understand that our present situation is neither natural nor inevitable, and that we consequently have many more possibilities before us than we imagine. For example, studying how Europeans came to dominate Africans enables us to realise that there is nothing natural or inevitable about the racial hierarchy, and that the world might well be arranged differently. 

우리는 역사를 왜 연구하는가?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Part Four. 과학혁명 The Scientific Revolution               
We are living in a technical age. Many are convinced that science and technology hold the answers to all our problems. We should just let the scientists and technicians go on with their work, and they will create heaven here on earth. But science is not an enterprise that takes place on some superior moral or spiritual plane above the rest of human activity. Like all other parts of our culture, it is shaped by economic, political and religious interests.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 속에 우리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학은 여타 인간활동보다 상위에 있는 고도의 도덕적, 정신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업이 아니다. 우리 문화의 다른 모든 면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The key factor was that the plant-seeking botanist and the colony-seeking naval officer shared a similar mindset. Both scientist and conqueror began by admitting ignorance – they both said, ‘I don’t know what’s out there.’ They both felt compelled to go out and make new discoveries. And they both hoped the new knowledge thus acquired would make them masters of the world.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희망했다. 

       

When evaluating global happiness, it is wrong to count the happiness only of the upper classes, of Europeans or of men. Perhaps it is also wrong to consider only the happiness of humans.          
Another is that the findings demonstrate that happiness is not the surplus of pleasant over unpleasant moments. Rather, happiness consists in seeing one’s life in its entirety as meaningful and worthwhile. There is an important cognitive and ethical component to happiness. Our values make all the difference to whether we see ourselves as ‘miserable slaves to a baby dictator’ or as ‘lovingly nurturing a new life’. As Nietzsche put it, if you have a why to live, you can bear almost any how. A meaningful life can be extremely satisfying even in the midst of hardship, whereas a meaningless life is a terrible ordeal no matter how comfortable it is. 


중세시대와 달리 경험과 수학을 통해 사피엔스는 무지를 인정하고 진보한다. 과학혁명 이후 과학자들은 이론에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다음 이론을  연구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빠르게 공유하며 다음 발걸음을 위해 무지를 인정한다. 물론 과학도 종교적 믿음 체계라고 볼 수 도 있지만, 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달리 믿음체계를 변경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질문하고 탐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상상의 질서보다 더 빠르게 인류역사를 발전시킨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과학혁명의 목적은 순수 과학 기술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다. 결국 과학 역시 이데올로기, 즉 상상의 질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과학에는 돈이 많이 든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결정을 하는데 이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행복', '삶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만들어낸 가치체계가 결국 상상의 산물이라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고민하게끔 한다.


사피엔스는 모르는 것을 인정한 그 순간부터 빠르게 성장했다. 우리는 모르기에 배우고 싶어 하며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기로 선택한다.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남아있는 이 세계에서 개인적 지식과 경험들은 특별하다. 집단의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상상의 질서에만 갇혀있기보다 개인 스스로의 질서를 세우고 나만의 무지를 이겨내는 경험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 낯선 느낌과 새로움은 당황스럽고 불편하지만 역사 속의 호모사피엔스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21세기의 호모사피엔스로서 나 또한 모르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며 나만의 상상의 질서, 행복을 정의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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