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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Apr 15. 2023

[일상아 잘 있거라] 봄이 와서 경주로 향했다

나의 두 발이 닿은 경주



혼자 떠나는 여행도 즐겁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 행복과 설렘이 두 배다. 나의 오랜 여행메이트인 언니와 신나게 짐을 싸서 새벽부터 KTX를 타러 갔다. 서울역에서 직접 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의외로(?) 처음이라 너무 신이 났다. 울 자매에겐 경주에 대한 남다른 추억도 있다. 물론 모든 것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 대구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주말마다 경주로 향해준 아빠 덕분에 ‘경주’는 우리에게 제법 익숙하고 특별하지만 조금은 멀어진 여행지였다.






역사에 들어서자마자 신이 난 나의 장단을 맞춰주는 언니 덕분에 신이 나서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사버렸다. 불편할 걸 알면서도 양념감자도 사고, 주먹밥도 구매했다. 새벽인데도 열차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너무 졸린 나머지 꾸벅꾸벅 졸았으나 오가는 사람들의 기척은 전부 느낄 수 있었다.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경주!

신경주역에서 내려 뚜벅이 여행을 시작하는 자매들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천으로 비단벌레열차는 취소가 됐고 플랜B까지 짤 만큼 꼼꼼하진 않아서 머리만 긁적이던 상태. 일단 숙소는 체크인이 3시이니 첨성대라도 보러 가자는 마음으로 시내로 향했다.


시내버스는 서울만큼 촘촘하게 올 거라고 기대하면 뚜벅이 여행자들은 택시를 타거나 포기하고 렌트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내심의 아이콘인 언니 덕분에 난 기다리고 기다려 경주 시내버스에 탑승!





거대한 저 ‘릉’이 뭐라고 신비로운지 모르겠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짐캐리에 짐을 맡기고 시내로 가는 내내 저러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기분이 점점 들떴다. 옷은 다 젖고 신발도 축축한데 그저 신이 났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던 첨성대가 이제와 이토록 귀엽고 소담하니 예뻐 보일 수가 있을까. 첨성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다고 하지만 나에겐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지금도 굳건히 서있는 신비한 문화재일 뿐이다. 비가 오는 첨성대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을 정도로 땅의 사정이 좋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가까이에 가서 기어코 사진을 남겼다.





사실 비가 오지 않으면 첨성대를 기점으로 볼 만한 관광지가 상당히 많으나, 우리는 바로 황리단길로 향했다. 황리단길은 걸어서 10여분 정도 걸렸다. 가는 내내 조금 힘이 들었는데, 이건 일찍 일어난 탓과 생각보다 힘든 빗속여정 탓이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날이었는데 꿋꿋하게 뚜벅뚜벅 잘 걷는 두 여자. 나는 불만이 생기면 바로 토로해버리는 타입이고 언니는 그래도 꾹 참는 편이라 어쩌면 상성이 맞는다. 내가 뾰로통해서 힘들어하면 언니가 덤덤하게 앞으로 나아가 나를 이끈다. 그게 언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날도 언니의 선두로 열심히 황리단길로 갔고, 가는 내내 고즈넉한 한옥과 우천으로 이제 막 문을 여는 상점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경주 고양이도 안녕! 비가 와서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도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서울에서도 요즘 인기가 많은 케일쌈밥과 돼지갈비를 먹었다. 경주에 가니 떡갈비보단 돼지갈비가 눈에 더 많이 띄었다. 내가 못 찾은 걸 수도 있겠으나 돼지갈비가 눈에 들어와  흔히들 말하는 ‘인스타감성’이 가득한 식당으로 입장. 금액은 꽤 있는 편이었고 맛은 그럭저럭 대중적이었다. 평일이라 웨이팅 없이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비가 오고, 평일이면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웬만한 맛집과 카페에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아래의 양지다방도 무사히 입성했다.





폭신한 수플레팬케이크와 커피는 쌀쌀했던 날씨에 지친 우리 두 다리를 쉬게 해주었다. 양지다방은 레트로한 느낌이 가득한 카페였고 금붕어를 키우는 커다란 수족관이 있는 카페였다. 취향이 아주 레트로한 쪽은 아니라서 쏘쏘했지만 옛날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주아주 선호할 분위기는 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수플레케이크가 상당히 맛이 좋다. 폭신하고 부드럽고 적당히 달달해서.





비 오는 황리단길을 좀더 걷기로 한다. 대릉원을 가기 전, 아쉬운 마음으로 황리단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황남샌드는 구매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이들 찾는 경주 기념품이라고 한다. 일본에 갔을 때 ‘오미야게’라고 하여 각 지역에 방문할 때 사람들이 구매하는 선물들이 있는데, 우리나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역의 특색에 맞거나 요즘 유행에 맞는 선물을 살 수 있다. 최근엔 마음샌드나 강릉샌드, 맛남샌드 등이 그 트렌드의 중심이지 않나 싶다.





지역 서점을 방문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어서어서’는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한 독립서점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대중적인 책도 있지만 독립서점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서적들로 가득했다. 시간을 할애하여 구경하기에 충분했다.





계절별 엽서가 왜 나왔는지 알겠는 비 오는 날의 대릉원. 고요한 대릉원이 주는 굳건한 위로가 여행의 피로를 물리쳐주는 느낌이었다.





대릉원 구경을 마치고 또(황)리단길에서 구매한 황남쫀드기. 라면스프같은 시즈닝이 챱챱 뿌려진 쫀드기는 울 자매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별미로 여행지에서 한번은 먹어볼 법한 맛. 문제는 쓰레기통이 별로 없어서 먹고 난 이후 처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했다.





쓰레기통을 찾아 헤매며 만난 풍경. 커다란 나무가 세월을 일러주는 듯하다. 날씨 탓에 사람은 적고 잔잔한 경주의 풍경만이 언니와 나를 감싸주었다. 우산에 쓰레기에 손이 좀 불편해도 괜찮았다. 평소엔 보기 힘든 느린 장면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한 뒤 들른 성동시장. 현지인들이 주로 찬거리와 여러 생필품을 구매하는 곳이었다.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특히 이곳엔 팥죽과 우엉김밥이 한쪽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먹어도 맛이 좋을 듯했다.


성동시장에서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의 팥죽과 유명한 보배김밥에서 김밥을 구매해 호텔로 향했다.





팥죽은 달지 않고 고소하고 짭짤하니 한끼 식사로 좋았고, 김밥은 달짝지근한 우엉과 합이 좋았다. 거창한 저녁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만찬이었다.


배도 채우고 호텔을 둘러볼 심산으로 언니와 다시 로비로 향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보문단지 근처의 라한셀렉트 호텔. 물도 좋고 시설도 깔끔해 여독을 풀기 괜찮았다. 특히 호텔 내에 있는 경주산책이라는 서점이 눈길을 끌었는데 큐레이팅이 심플하게 되어있어 보기 편했다.


한참을 서점에서 서성이다 언니와 충동적으로 경주의 야경 관광 대열에 합류했다.





패스권을 구입해 의도치 않은 야경 관람을 하는 내내 경주 달이 뜬 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고즈넉하고 웅장하여 마음에 설렘이 가득 들어찼다. 걷기만해도 이야기가 저절로 나올 거 같은 풍경을 지닌 경주의 분위기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가기 전 잠시 들른 스타벅스에서 괜찮은 MD가 있나 봤는데 딱히 살만한 건 없었다. 그럼에도 한옥 형식의 스타벅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멋졌다.


결국 스타벅스에서 소비를 실패하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이 무렵 서비스를 시작한 애플페이를 개시했다.



애플페이의 전리품

조촐한 과자와 음료를 사 호텔에서 언니와 삼국시대 그리고 신라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신라 다큐멘터리를 보고 과몰입을 해버렸고 난 신라의 미소에 푹 빠지고 말았다. 하여 경주 2일차는 그야말로 “신라의 미소를 찾아라!”같은 여행이었다.


경주여행기는 이어질 테고 이를 적으며 다시 경주를 되새기는 기분 좋은 나날을 맞이할 생각에 벌써 행복하다. 소중하지만 다소 진부한 일상을 잠시 잘라놓고 다채로운 추억을 꼭꼭 몸과 마음에 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고생했고 잘해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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