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

by 말물

그것이 삶의 문제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으려던 게 아닌가?



올해 1월의 어느날. 눈을 뜨니 나는 졸업을 앞둔 상태가 되었다. 불안정한 미래, 진로의 문제가 내 발끝을 간지럽혔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고정되어 온 과연 대학원에 갈 것인가 아니면 어쩔 것인가의 문제가 미룰 수 없이, 이제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작년 가을부턴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정말 곧장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꿈에 물든 결정이라는 것은 나도, 주변인도 다 알았다. 내가 돈을 버는 길을 경멸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인생이라면 무엇도 경멸하지 않았다. 여하튼 결단을 내려야 했으므로 속으로 여러 번 내 소망을 긍정했고, 내 소망을 논박했었다. 한 번 내 길을 따라 가보라는 친구들을 만났고, 정신 차리라는 친구들도 만났다.


1월 중순쯤에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일 보 포기했다. 경제적인 것이나 인생에 관한 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꿈꾸는 연구자의 모습이 지나치게 고상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인 고민이 있었다. 인문학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학문이다. (언제까지나!) 통찰하는 일, 추상을 사유하는 일이 항상 기쁘고 재미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탁자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묻는 것은 정치적이지만, 그 아름다움의 사회적 기준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나르키소스의 분노, 세르히오 블랑코


공상은, 가끔 우리가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게 한다. 아마 세르히오 블랑코의 이 글을 읽고 정신이 퍽 깨어난 것 같았다.


인문학이 섬세하게 터치하고 깨우는 것은 시대 정신이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에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에 “물음”이 빠진다면, 질문이 단순히 답을 얻기 위해 소진되는 문장에 그치게 된다면 인간은 인간다움을 잃을 것이다. 영원히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일에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문학이 쓸모없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김현의 말에 지금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그것에 몰두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더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기 때문에. 공상의 마법에서 벗어나, 극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월요일에 꼭 가고 싶은 세미나가 있었다. 일정이 날 것 같지 않아서 신청조차 안 했다. 그러다 오늘 공부를 하고 진이 빠져서 예정된 발표자의 논문을 샀다. 연구자가 되고 싶다거나 연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당장에 전부 접은 것은 아니다. (물론 뭘 연구하고 싶은지 생각은 없다. 부끄럽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고,) 인문학은 세상에도 그렇지만 나에게도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꿈이다. 그런데 논문을 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간혹, 전업으로 무엇을 하지 않고, A를 소비하고, 읽고, 교양과 취미로 삼는 이들을, 그 생산자보다 재능과 능력의 층위에서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는 할까? 왜 우리의 눈에 화가를 하지 못해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은, 인문과 예술의 길을 따라 가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먹고 살 업으로 삼아 나간 사람에게만, 그것이 삶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질문을 하고 나니 내가 연구자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소망한 것이 편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면 그것이 내 삶의 문제라고 증명하기 위해서 두 갈래 진로라는 틀에 매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앞에 펼쳐진 무한한 길들을 딱딱하게 몇 개로 한정지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A이지만 B는 아니고, 그러나 C인 길들이 나에게 열려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글을 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앨런 긴즈버그는 하울을 쓸 때 뉴욕에서 마켓 리서처로 일을 했다. (이게 내가 경영학을 꾹 참고 한 학기 공부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그도 재능이 바로 빛을 발해서 뛰어난 작가가 되지는 않았단 뜻이다. 공부든, 글을 쓰는 일이든, 예술이든, 그것은 전업이 되든 되지 않든 내 인생에 함께할 것이다. 2개의 작품을 쓰고, 나는 새해를 맞을 때면 올해는 무슨 영감이 내 머리를 두드릴지 기대하곤 한다.


다양한 길과 수단을 시도하는 대신 미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빨간 선 하나만 따라가면 된다는 발상은 뜨뜻한 방구석에서나 가능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길 위에서 1 - 세계문학전집 226 | 잭 케루악

작가의 이전글오로지 증오하기 위하여, 증오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