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가자, 그리고 더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오전 4시는 되어야 잠이 온다. 그 전까지는 SNS를 보는데, 유흥거리도 많지만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미니에폴리스. 이란. 너무 끔찍한 걸 봐서, 어디에라도 말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서 글을 쓴다.
남아시아의 한 유저가 AI를 개발하여 트위터(X)에 업로드한다. Brice라는 이름의 AI, 영어 외에 다른 언어가 감지되면 그 사람의 위치를 위도와 경도의 좌표로 나타내고, ICE 요원을 부르는 거다. 차별주의(racism)라는 말에 고맙다는 멘션을 달았다. 이 AI는 빠른 시간 내에 미국의 극우 세력에 의해 사이트에 업로드된다.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알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걸 사용하기 위해, 위대하다는 AI를 개발한 유저를 위해 돈을 지불한다. 그렇게 모인 돈이 방금 확인한 것 기준 2198달러다. 토가 나온다. 르네 굿을 죽인 ICE 요원은 MAGA로부터 돈을 받아 벼락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3만명이 넘게 정부에 의해 학살당했다. 트럼프는 가자 평화위를 개설했고, 가자 평화위는 사람들이 사라진 가자의 땅을 부동산으로서 활용할 방법을 찾는다.
일반적으로 내가 본 전쟁을 다룬 연극들에서, 군인들은 강제로 징집된 체제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남거나, 시스템 하에서 악랄해졌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지적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작품들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보면, 비단 미국, 이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려 한다. 사람들이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 환호한다. 인간의 윤리적 선이 내가 아는 한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내가 너무 무지했던 걸까? 세계는 항상 이런 모습을 띄어왔는데, 내가 몰랐던 걸까? 사람들은 내가 몰랐던 사이에 왜 이렇게 잔악해진 걸까? 무엇을 위해 이러는 걸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고 싶게 만들었을까?
이유를 찾으려고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있을까, 아니면 부고니아처럼, 이것이 마지막일까? 부고니아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오간다. 이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내 안에 있다. 100년 전의 인간 종에 대한 기대는 현대에 맞지 않는다.
타지마할의 근위병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름다움은 죽었다. 황제는 엿이나 먹어라. 아름다움은 죽었다. 도저히, 내가 내 안전한 상황에서 즐기는 연극의 다양한 메시지들과, 내가 거기 기대어 느끼는 감정적 안락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죽어봤자 커튼콜에서는 다시 살아나는데, 그런데 진짜 현실에는 그런 게 없다. 그 수많은 시체들은 재현될 수도 없다. 너무 많아서.
피디수첩에서 얼마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포로로 잡혀간 북한군을 인터뷰하였는데, 그가 말한다. 그 많은 유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많은 유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내 심장에 박혔다.
인간에게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질 능력이 없다. 죽음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사람을 죽인다, 사람이 죽는다는 말에 실리는 무게가 왜 이렇게 가벼워진 건지 모르겠다. 킬롤로지의 대사에 그 말이 있다.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병사들은 직접 마주한 적군을 죽이지 못했고, 그렇게 2차 세계대전이 이르기 전 그들이 연습한 것은 사람 모양 짚인형을 쏘는 것, 그래서 진짜 사람을 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데 이제는 그보다 더하다. 사람은 포인트가 나오는 과녁이다. 이제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웃고, 시체에 대고 욕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이제 살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상황이 정말 무섭다. 내가 믿고 공부해온 가치들이 자꾸만 무너진다. 하지만 나는 글을 마칠 거고, 이 문제는 여전히 나에게 생존의 위기는 아닌 상태로, 떠돌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닐뿐이다. 언젠가 나도 이 광풍에 휩쓸려 죽게 될 거다.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고, 공포와 혐오가, 증오와 조롱이 살인을 가능하게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은 나다. 아무런 가치 없이, 특별함 없이, 생의 거룩함 없이 나는 핏덩이로 내던져질 것이다. 그게 지금 각지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