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by 말물


인간의 언어에는 사람을 단번에 미치게 만들 수 있는 독침이 숨겨져 있다. 그런 말에 찔린 상처는 잘 낫지 않는다. 전에 다친 자리가 또다시 후벼파졌다면, 더, 그 상처는 짧으면 3주에서 4개월, 5개월, 1년까지도 간다. 아픈 사람의 마음은 마치 달궈진 구두를 신은 사람처럼 날뛴다. 그의 숨은 불규칙적으로 헐떡이거나 멈춘다. 눈물이 쉼없이 흐른다. 움직일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 그런 상태에 빠지면 인간은 단 하나만을 원한다. 영혼의 파괴, 그리고 영혼의 치유. 둘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때 나를 닮은 내러티브를 원한다.

굳이 예술이라고 넓게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내가 회화의 시각적 작용은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고상한 아름다움이 우리의 영혼을 울릴 수 있다고 해도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 앞에 모네의 작품을 들이대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는 비명 속에서 인간을 건져낸다. 내러티브 속 미칠 것처럼 터져나가는 문장들과 몸짓과 울부짖음이 무너진 자리들과 접촉한다. 곧 그것들은 우리와 함께 부서지고 산산조각나고 함께 울며 지나간다. 그러다 끝이 나고 우리는 너덜너덜해진 채로 걸어 나간다. 밖으로. 바깥으로. 뜨겁고 쓰린 곳으로. 몇 번이고 다시 다칠 곳으로. 원형 경기장으로. 그게 남기는 사실은 우리는 절대 죽지 않고는 조각 조각으로 찢어질 수 없다는 것. 온전한 치유도 없다. 행복한 나날들은 없다.

거기다 책장이 덮이고 연극이 끝나고 나면 카타르시스는 온데간데 없고, 다가오는 시험과 지하철 시간표와 통금시간만 있다.

그래도 이야기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전보다는 살만하다. 숨이 쉬어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세 걸음쯤 걷고 나면 내일은 올 준비를 마친다. 잔인하지만 침대는 또 포근하다. 악몽을 꾸든 말든, 잠은 또 달콤하다.


글에 논리가 너무 없는데, 그냥 지금 글이 쓰고 싶고 책이 읽고 싶었다. 당장 뭐라도 좋으니 날 부수거나 위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은 날 파괴하지 않을 정도의 고통만 준다고 했던가? 그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던데 난 좋더라. 그냥 항상 그 말이 동앗줄처럼 느껴졌었다. 어쨌거나 살아내겠지. 아주 조금 앞선 미래의 나는 살아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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