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월
자신의 의견을 적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나의 말 속에 진심이 아닌 일말의 허세나, 위선이 섞여 있을까 매순간 부끄럽다. 목소리를 내는 것, 그렇게 나의 목소리가 타인에게 울림을 주리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판단의 대상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부끄러움을 이겨낸 결과이다. 또한 나의 생각이 완전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것의 안온함을 벗어난 용기의 결과이다. 나는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을 존경한다. 또한 나의 글에 대한 혐오감을 넘어설 만큼 말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강하게 되어, 들끓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활자들을 토해 본다.
12월 3일, 10시 27분부터 잠이 들었던 4일 새벽 3시까지 나는 무력감과 불안, 공포로 가득한 마음으로 TV 화면을 지켜보았다. 실시간으로 보내지는 영상들이 나의 상식과 내가 믿는 가치를 붕괴시키고 있었다.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섰다. 국회에 들어서기 이전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국회의 창문이 깨졌다. 그것은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불합리한 국가더라도, 국가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하는 기본적인 상식을 무너뜨렸다. 영상 속에 국가란 없었다. 내가 국가라고 믿어왔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손에 쥘 수 있게끔 하는 권력에 지나지 않았다.
군인들은 국회에 서 있던 이들의 말에 응답하지 않았고, 대통령은 몇 분이 되지 않는, 현실과 괴리된 언어로 점철되어 있던 계엄 선포만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무력감은 거기에서 왔다. 누군가의 외침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담은 말이 되지 못한다는 것.
포고령은 그것을 증명하듯, 너무나도 무감각한 언어로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고, 생명권을 앗아가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작년의 여름, 어느날 아침 7시, 무능한 국가의 착각으로 온 나라에 크게 사이렌이 울리던 날, 나는 처음으로 일상이 깨지는 감각을 느꼈다. 정신이 심약한 터라 1년 간은 그 사이렌 소리에, 전쟁의 공포에 자주 악몽을 꾸었다. 시험기간이면 전투기가, 경보가, 총 든 군인들이 꿈에 나왔다. 내가 예민한 성정을 가졌기 때문이었지만, 나는 전쟁은 이처럼 시끄럽게 시작되는 것이라고,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진실된 전쟁은 고요하게 왔다. 사이렌도, 귀청을 떨어뜨리는 재난 안내 문자도 없이, 단 한 명의 입에서, 작게.
12월 3일 그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던 늙은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내 일상이 깨졌다. 계엄 사태는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실패’한 채 정리되었다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균열은 아직도 메워지지 못한 채 여전히 나의 삶을 비정상의 영역에 남겨두고 변화시키고 있다.
무력감이 뚫어놓은 구멍이 세상을 향한 분노로, 나 자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다. 내가 믿는 가치들, 내가 배우는 학문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계엄령이 떨어지던 날 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나? 나의 모든 공부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의 결론은 그것들은 홀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예술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그렇게 예술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움직여야 한다. 일어서야 한다. 학자와 예술가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그래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의지를 갖는 것이다. 내가 본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은 세상을 바꾸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어냈다. 예술이 세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예술을 반영할 수 있다면, 나는 예술의 의지를 이어받겠다. 그렇게 나의 국가를, 아니, 나는 국가를 믿지 않으므로,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고통받은 이들과 연대하겠다.
투쟁심은, 분노는 두려움과 공포를 이긴다. 무력감조차 꽉 채우는 것이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어디 한 번 해보자.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민주주의 이념에서, 국민에게서 등을 돌린 너희는, 국민이 바라보는 가운데 투표를 회피한 너희는 결코 너희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온 세상이 민주주의 위에 자본주의를, 옳음 위에 이익을, 이데올로기를 얹어놓고 있던 시대였다. 국제 사회에서 계엄령을 뒤집은 작은 나라를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투쟁하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일구어져 왔고, 그 노력이 문학으로서 세계에 알려진 2024년, 대한민국은 정의를 추구하는 시대정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