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고등학교 3학년, 19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던 환상통, 우울에 시달리던 너를 기억해.
그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너는 모순된 자신을 정의해보겠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너는 무엇이든 잘하고 싶어 했어. 동시에 모두가 원하는 목표로, 아무 의식 없이 나아가는 자신을 싫어했어.
너는 못하는 자신을 미워했어. 그게 어느 정도는 게으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널 괴롭혔어.
그러면서도 너는 왜 잘해야만 하는 거냐며 울었고, 이 생각의 연쇄가 결국 비겁한 자기연민 같다는 감각이 너를 아프게 했어.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의 너를 어떠한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
괜찮아, 잘 하고 있어. 너의 모든 노력이 가치 있어.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응원은 '나는 노력하지 않았고 그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던 너의 절규에 무너져 버렸어.
그렇게 현실에 굴복하고 무너진 너의 모습은 예술, 꿈, 이상을 추구하던 너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었어.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아서 현실이 너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할 수 없었어.
잘못 태어난 것 같아,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의 결론이었어.
넌 스스로가 그레고르 잠자가 된 것 같다고 말했지.
지금의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벌레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글을 쓰고, 허세 가득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시절이 지나버렸다고.
나는 결국 그런 형편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거라고.
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슬픔과 아픔까지 네가 정당화해야 하는 이유는 없어.
너는 울 때조차 마음껏 울지 못해. 그 눈물이 존재해 마땅한지 판단하지.
그러니 너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사람이야.
네가 미워하는 현실의 일부에 네가 있다는 사실이, 널 이루고 있는 것들이 네가 싫어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이 널 더는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의미 없는 죄책감에 더는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도 네 우울이 너에게 필요한 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해.
의미 없는 속죄와 괴로움이 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해.
네가 여전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제 널 미워하는 이유조차 잊어버렸을까봐 편지를 적어 보내.
이 편지의 말들로 언젠가 자신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