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걸고

자신을 담보 잡히고 무한 책임지는 일

by 김희재


이름 없는 사람들의 전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을 찾기 위한 전투였다.


나는 요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Sing Again)에 푹 빠졌다. 대중적 인지도를 얻지 못한 무명 가수들이 서바이벌 과정을 통해 자기 이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었다.


모든 참가자는 최종 10인에 들기 전까진 7호, 31호, 34호 가수 등 그냥 번호로만 불렸다.


참가자 중엔 여태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왔느냐고 감탄하게 되는 실력자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재야의 고수들도 꽤 있었다.



아무리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주가 탁월해도 대중적 인지도가 없으면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대결 판에 올라 오직 노래로만 겨루는 걸 택했다. 다들 무명의 설움을 벗어버리고 싶어서 무대 위에서 절규하며 몸부림쳤다. 그 간절함에 매료되어 나도 따라서 울고 웃었다.





참가자들의 가슴에 붙인 번호를 보면 저절로 마라토너가 떠오른다. 마라톤 경기에 나선 사람들 역시 가슴과 등에 커다란 숫자를 붙이고 뛴다. 경주하는 동안 선수들은 번호로만 존재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공평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엔 무리 지어 뛰는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 같지만, 마라톤은 혼자 달리는 것이다. 끝까지 완주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면 페이스를 잃게 되고, 그동안 애써 연습한 것도 허사가 된다.


외로움 속에다 자신을 제대로 가두는 것이 경주자의 선행 과제다.



공개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들은 경연 내내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갈등하며 채근했다. 참가자들은 그저 악보에 적힌 음표대로 부르기에 급급하지 않았다. 자기가 걸어온 모든 시간의 궤적과 생각의 흐름을 노래에 담아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진심을 가득 담아 영혼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여러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무명(無名)에서 벗어났다.


번호로 불리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되찾은 뒤에는 경연의 심사 방식이 달라졌다. 전문심사위원은 물론 시청자들의 투표수에 따라 순위를 가리게 되었다.



단지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선사해야만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지적을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인 사람은 경연 중에도 폭풍 성장하였다.


나는 자기만의 색깔이 선명하면서도 유난스럽지 않은 사람을 특히 좋아했다.


그들의 경연을 지켜보며, 세상에다 자기 이름을 걸어 놓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름을 건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 자신을 담보 잡힌다는 말이고, 모든 걸 본인이 다 책임을 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싱어게인.jpg 싱어게인 한 장면


우연한 기회에 신문의 문화면에다 내 이름으로 고정란을 만들게 되었다. 신문사 측에서는 아무 형태의 글이나 다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지면에다 2주에 수필 한 편씩을 연재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에는 뭘 먹을지 걱정하는 주부처럼, 원고를 보내고 돌아서면서 다음 원고를 생각해야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원고 마감일은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너무도 빨리 돌아왔다. 자나 깨나 온통 원고 생각만 하며 지내게 되었다. 나 자신을 지독한 외로움에 가두지 않으면 기한에 맞춰 글을 보낼 수가 없었다. 혼자 걸으며 묵상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전자 신문이라 작품의 링크를 스마트폰으로 보내 주면 사람들이 여유롭게 찬찬히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카톡으로 전달받은 글 한 편은 수월하게 읽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와 카페, 단톡방에다 내 글을 부지런히 공유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출판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게 되고, 독자의 반응도 즉각 파악할 수 있었다.


기다렸다가 반갑게 읽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기한에 맞춰 작품을 보내야만 한다. 내 이름을 걸고 스스로 한 약속이라 어떻게든 지키려고 죽을힘을 다한다. 등단한 지 24년이 넘은 지금에야 비로소 아마추어 태를 벗고 전업 작가적 사고방식을 갖게 된 셈이다.





나는 지금 공개 오디션을 치르는 심정으로 신문에다 연재하고 있다.


‘수필은 글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요즘처럼 두렵게 느껴진 적도 없다. 인격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동안 써 놓은 초고(礎稿)가 제법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글을 골라서 완성해 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매번 치열하게 퇴고(推敲)하느라 날밤을 새워야 한다.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끝에 어떤 보람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오래도록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내 이름 앞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소망한다.


그러려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깊은 삶의 의미를 깨우쳐야 하는데,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간구(懇求)하며 더욱 낮은 자세로 사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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