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사이지만

제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by 김희재


제주도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 사람과 전시실에서 본 돌멩이를 생각하게 된다. 우린 인사도 나눈 적 없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대화는커녕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평생 딱 한 번, 먼발치에서 얼굴만 잠시 보았을 뿐이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고, 그의 영혼에서 보내는 강렬한 파장을 느꼈다.


내가 김영갑 갤러리를 처음 찾아간 것은 2003년도였다. 폐교를 수리해서 만든 갤러리에 전시된 사진작품이 좋더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간 길이었다. 갤러리를 만든 작가는 루게릭병에 걸려서 투병하고 있다는 사연도 전해 들었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사계절을 담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 쪼그리고 있다 보니 병이 생겼고, 몸이 점점 굳어지는 병이라고 했다.



그날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봄날처럼 따뜻하고 화창했다.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이 온통 구멍 숭숭한 검은 돌 천지였다. 아직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풍광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신비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당에 그득한 제주도 현무암은 내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아직 갤러리 조성이 덜 끝난 상태라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멈춰 섰다. 현관 옆 사무실에 아주 깡마른 남자가 무생물처럼 앉아 있었다. 인도의 고승 같은 분위기였고 시종 무표정했다. 그런데도 눈빛은 매우 강렬했다. 바로 김영갑 작가였다.



김영갑.jpg 사진작가 김영갑


무심히 힐끗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마치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의 대표작 ‘제주의 사계’는 마치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사진이다. 같은 장소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색감이 나도록 찍었다. 투명하고 고운 색채 속에 작가의 혼과 열정, 슬픔, 아픔, 기쁨, 미래, 생명까지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조금 전에 입구에서 본 남자의 모든 것을 다 갈아 넣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자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그렇다고 작가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은 아니었다.


전시실엔 액자보다 돌멩이가 훨씬 더 많았다. 크고 작은 돌들이 온 사방에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작은 돌멩이는 볼품없고 아무 특징도 없었다. 수채화처럼 정갈한 사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소품이었다.


희한하게도 액자보다 돌멩이가 내 눈에 더 들어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 많은 돌멩이 중의 하나에 불과하구나. 전시실에 깔린 돌멩이처럼 볼품없고 존재감도 없구나. 불쑥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명치끝에서 올라왔다. 깊은 속울음이 터졌다.



한때는 나도 누구보다 유별난 감성을 지닌 문학소녀였다. 작가를 꿈꾸었던 소녀는 지금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 일상에 함몰되어 사느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살았다. 아직도 글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내 삶의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문학에 대한 열망을 내버리지도, 글을 치열하게 쓰지도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내 모습이 보였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볼품없는 돌멩이 중 하나였다. 천재적인 재능도 없으면서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는 전시실 한쪽 구석에 서서 한참 흐느껴 울었다.



갤러리 마당.jpg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마당 풍경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제일 먼저 그 갤러리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찾아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평범한 마을 풍경 속에 묻혀있었다. 간판도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갔는데도 여러 번 그냥 지나칠 정도였다.


이번에는 65세가 넘었다고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들여보내 주었다.


전시실은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전시장에 쌓여있던 투박한 돌멩이는 다 치워버렸다. 그 대신 자잘하고 매끈한 조약돌을 조금 진열해 놓았다. 처음 봤을 때의 강렬한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 아쉬웠다.



돌멩이를 조금 깔아 놓은 지금의 전시실


자기 몸이 굳어지는 줄도 모르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작가 혼’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했던 작가 혼은 축복일까, 천형(天刑)일까? 예술적 성취감을 얻기 위해 집요하게 몰두하려면 반드시 평범하고 느긋한 일상은 포기해야만 하는가?


2005년 5월 29일에 1957년생 김영갑은 이 세상을 떠났다. 다 놓고 돌아가기엔 아까운 나이, 향년 48세였다. 그는 지금도 두모악 갤러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이승에다 벗어놓고 간 낡은 육신은 전시관 바로 앞에 있는 감나무 아래 뿌려졌다. 손수 심어 놓고, 평소에 애인처럼 사랑했다던 그 나무는 그리 잘생기지도 크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나는 멀찍이서 그를 바라만 보았을 뿐이다. 인사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비록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사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그날 잠시 마주친 순간으로 인해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열정을 다시 일깨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껏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2023년 아르코창작지원금 선정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