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썩은 매화

제주도 <생각하는 정원> 에서

by 김희재


앙상한 가지 끝에 팥알만 한 붉은 구슬이 조롱조롱 달렸다. 작은 꽃망울이다. 죽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마른 나무에 꽃눈이 틔었다. 제목을 ‘속 썩은 매화’라고 붙인 분재 화분이었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로도 화분을 설명해 놓았다. 이런 내용이었다.


‘수령이 100년 정도 된 매화나무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몇 그루의 나무를 합쳐 심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합쳐 심은 것이 아니고 본디 한 그루의 나무 가운데가 썩어서 속이 넓어진 것입니다.


나무는 목질부인 가운데가 약하고 표피부가 강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나무 가운데가 썩어서 공동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약한 부분은 썩어들어가게 마련이라 생긴 결과입니다.


분재한 나무도 속이 썩어야 넓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마음이 썩어야 넓어지게 됩니다.’



속이 썩었다는 표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걸핏하면 나를 붙잡고, 자기는 속이 다 썩어서 문드러졌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에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일본이 군수품을 만든다고 마구잡이로 물자를 수탈해 가던 시절이었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가서 살았다. 그녀 가족도 이주민 대열에 끼어 있었다.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는 혼란한 시국이었다.


그녀는 6.25 전쟁을 온몸으로 직접 겪었고, 잿더미가 된 폐허 속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근대화를 거쳐 한강의 기적을 일군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먹고살기 버거운 빈민층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고지식하고 순진한 사람이 살아가기엔 복잡한 변수가 너무 많은 세상이었다.


그녀는 원래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 화가 나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삭였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늘 뒤로 숨었다. 표출되지 못한 울화는 가슴에 차곡차곡 쌓였다. 정 참기 힘든 순간이면 혼자 몰래 술을 마셨다. 온순하고 얌전한 사람인데 술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주사(酒邪)가 심했다.


온갖 욕설을 마구 퍼붓거나, 곡비(哭婢)처럼 넋두리하며 구슬피 울었다. 칡덩굴처럼 엉켜있는 부정적인 기억으로 인해 늘 억울하고 불행했다. 그녀의 마음은 푹 썩었지만 조금도 넓어지지 못한 채 삶이 끝났다.





제주에서 30여 년 넘게 사는 친구가 우리를 초청했다. 정년퇴직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제주의 명소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곧바로 ‘생각하는 정원(Spirited Garden)’으로 향했다.


생각하는 정원2.jpeg 생각하는 정원


이곳은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잘 알려진 관광 명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곳이다. 1968년부터 한 농부의 집념 어린 노력으로 완성한, 창조와 예술과 철학이 융합된 국가지정 민간 정원이다. 한국 고유의 정원수와 분재, 괴석과 수석이 잔디광장과 오름의 여백을 따라 전시된 공간이다.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 쌀쌀한 1월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넓은 정원을 우리가 독차지할 수 있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눈 덮인 한라산의 풍경은 보너스로 따라왔다. 전시된 분재와 글을 찬찬히 읽으며 여유롭게 산책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편안하고 좋았다.


사실 나는 분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분재는 멀쩡한 나무를 인위적으로 속박하여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게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빨간 꽃망울이 달린 속 썩은 매화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고통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도 썩어야 비로소 넓어진다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생각하는 정원1.jpeg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님 저서


생각하는 정원의 원장님은 철학자 못지않은 사유(思惟)하는 농부였다. 친구와 잘 아는 사이여서 같이 대화할 수 있었다. 미리 약속하고 갔는데도 그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우릴 맞았다.


8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꼿꼿하고 몸놀림이 민첩했다. 눈빛도 매서웠다. 오늘도 담장을 보수할 돌을 다듬다가 우리에게 온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초등학교 졸업도 간신히 한 일개 농부라고 당당하게 소개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서 거침없이 술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한 말 탄 일본 순사가 아버지를 채찍으로 때리던 광경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아직껏 풀어지지 않는 원통함이었다.


6.25 전쟁 때 겪은 처참한 순간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풀어냈다. 지독하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연 농원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꿈을 품고 있었다.



무작정 제주도로 왔다. 육지 사람이기 때문에 소외감과 설움도 많이 겪었다. 황무지였던 땅을 일구어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며 살아온 한평생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이어진 이야기는 거대한 대하 드라마였다.


다행히도 비극은 아니었다. 불평과 원망, 후회하는 시선이 아니어서 좋았다.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이 밝고 환하다. 고생은 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아 보였다. 마음이 썩어서 삶의 폭이 넓어진 모습이었다.


정원 곳곳에 붙어 있던 글귀,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늙는다는 말도 계속 곱씹어 보게 되었다.


(2023년 아르코창작지원금 선정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