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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Jun 13. 2024

알람브라 궁전에서 울다

트레몰로 주법의 선율이 흐르는

드디어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평생 벼르기만 했던 곳이다. 내겐 아무런 추억도 없는 그 궁전에 꼭 가보고 싶었다.


물방울 구르는 듯한 기타연주곡과 현빈 주연의 가상현실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때문이었다.


전세버스에서 막 내려오는데 가이드가 음악을 틀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계속 튕기는 트레몰로 주법이 오늘따라 유난히 애잔하게 느껴진다.    

  



 이 곡은 19세기 후반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현대적인 연주법을 완성한 위대한 연주가이기도 한 타레가(Francisco Tarrega, 1852~1909)의 작품이다.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경이롭고 낭만적인 연주 스타일 덕분에 ‘기타의 사라사테’로 불리기도 했다. 이 곡이 탄생하게 된 비화(悲話)도 있다.


1896년, 타레가는 자기의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했는데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부했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던 중에 그라나다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달빛이 드리워진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었다. 자신의 가슴 아픈 사랑을 생각하며 기타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 노래에 얽힌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알람브라 궁전의 풍경과 딱 어울리는 음악이다.



 Alhambra는 ‘붉은 것’이라는 뜻의 아랍어 ‘Al-Hamra’에서 유래된 말로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스페인어는 h가 묵음이므로 Alhambra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알람브라로 표기해야 맞는다.


스페인어로 그라나다(Granada)는 새빨간 씨앗을 가득 품은 석류를 의미한다.


알람브라궁전 정원에 있는 석류나무


711년에 이베리아반도로 들어온 무어인들은 13세기 초 안달루시아의 수도였던 세비야가 가톨릭교에 점령되자 그라나다로 터를 옮겼다. 나스르 왕조는 여기에다 1238년경부터 알람브라 궁전을 짓기 시작하였고, 250년 가까이 살면서 그들만의 화려한 문화를 이룩했다.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는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1492년, 그라나다의 보압딜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나스르 왕조의 멸망으로 이슬람 왕국은 사라지고 이베리아반도는 다시 가톨릭 국가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세운 알람브라 궁전은 유럽에 세워진 이슬람 건축의 백미로 남았다.


 ‘그라나다에서 소경이 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라는 찬사가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건축물이었다.



스페인 군대는 1491년부터 알람브라 궁전을 포위하여 고사 작전을 세웠다. 8개월 동안 압박을 당한 끝에 식량이 떨어지자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저항을 멈추고 은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항복했다.


그의 항복 조건은 지속적인 왕의 존재 인정, 이곳에 사는 이슬람과 유대인 백성들의 정치, 종교의 자유 보장이었다.


이사벨 여왕은 흔쾌히 항복 조건을 다 승인했다. 그리고 물의 근원지인 알푸하라스(Alpujarras) 계곡과 금화 삼만 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보압딜은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정복자에게 바칠 금화를 준비했다.


이사벨 여왕과 그녀의 남편은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하고, 이슬람 왕족과 시민들이 무릎 꿇고 있는 알람브라 궁전으로 무혈 입성했다. 그라나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기였다. 처음엔 그들도 이슬람교도들을 회유하고 달래서 끌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사벨 여왕이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난 후에 상황은 바뀌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듯한 궁전의 호화로움과 완벽하게 아름다운 정원 풍광에 이사벨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특히 시에라 네바다 산맥 정상에 있는 만년설 녹은 물을 땅속 수로를 통해 끌어다가 만든 분수와 연못은 상상을 초월한 놀라움이었다.


여왕은 이 궁전을 오롯이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이슬람과 유대인의 정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한 말을 뒤집고 이슬람교도들을 무참히 박해하기 시작했다.


펀혜의 요새인 알람브라궁전

 

마침내 보압딜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이사벨에게 내주고 말았다.


가족들과 부하들, 그리고 동행하길 원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아프리카 모로코로 향했다. 점점 멀어지는 궁전을 바라보며 왕과 신하들 모두 목놓아 통곡했다. 천혜의 요새인 알람브라를 싸움 한번 해 보지 않고 그냥 내어 주고 나온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찬찬히 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정원 끝 모퉁이에 우리 일행 K 씨가 고개를 수그리고 서 있다. 멀리서 봐도 남몰래 오열하고 있는 몸짓이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누구보다 신나게 펄펄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많이 속상한 모양이다.


워낙 빡빡한 여정이라 너나없이 다 지쳐가는 중이었다.  나는 인기척도 내지 않고 그녀 옆으로 가만히 다가갔다. 어떻게든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동병상련이었다.


지나가 버린 청춘이 새삼 그립고, 붙잡아 둘 수 없는 시간이 야속했다. 덩달아 울컥해진 내 가슴속에 트레몰로 주법의 애잔한 배경음악이 다시 깔렸다.


안아 줄까?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K 씨는 외면한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우린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포옹



          (계간수필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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