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보러 가는 길 #1

엄니 델러 가는 길

by 불지않는 면빨

84세인 내 엄니는 사지를 쓰지 못한다.


부산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한 후 갖은 고생으로 허리가 고장이 났고, 언제부터인가 걸을 때 상체를 뒤집으며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걷게 되는 모습으로 변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니 넘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오래전, 새벽에 울린 전화벨 소리에 놀라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오른쪽 어깨뼈가 바스러지는 사달이 났다.


그 전화벨 소리는 택시 안에서 시체가 되어 버린 나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버려두고 내 휴대폰 즐겨 찾기에 표시된 본가를 누르고 떠나 버린 택시 기사의 전화였다


당시 내 직장 보스가 예술적으로 만들어 준, 맥주컵 밖의 중력과 컵 안의 표면장력이 딱 만나는 지점에 다다르면 맥주컵에 부은 소주가 맥주컵 끝에서 볼록하게 솟아 있게 되는 모습이 두꺼비 왕눈깔 같다고 하여 붙여진, ‘눈깔폭탄주’ 소주를 완샷으로 마시고 벌어진 일이었다.


여러 번의 수술에도 끝내 회복하지 못해 엄니의 어깨는 관절이 없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큰아들인 내 책임이 되었다.


불구가 된 어깨와 팔이 가져온 운동저하로 무거워진 상체를 버티지 못하고 무릎에 또 탈이 났다. 코로나 시절,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시키자는 아버지 의견에 자식들은 또 어깨뼈 수술처럼 잘 못 될 수 있으니, 좀 더 견뎌보자고 했고, 하더라도 코로나 시국을 피해서 서울 큰 병원에서 하자고 했다. 부친의 고집으로 서둘러 강행된 무릎 수술이 결국 탈이 났다.


이로써 엄니는 휠체어 신세가 되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책하게 되었다.


엄니가 스스로 화장실을 가지 못하니 부친이 엄니의 팔과 다리가 된 지 만 5년이 넘었다. 90세를 바라보는 아버지 역시 당연하게도 행동이 느려지고, 말이 어눌해졌다. 두 양반은 자기들끼리 더 버틸 수 있다고 우기고 있지만, 자식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엄니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튀어 갈 수 있게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 근처에 있는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많이 불편해지면 종국에 의탁해야 하는 곳으로 무심히 생각했던 요양원.


그곳에 막상 엄니를 모시려고 하니, 가족들에게 각자의 처지와 이유에 따라 다양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엄니가 휠체어 신세가 된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죄책감, 90세 가까운 남편을 5년이 넘도록 자기 수발들게 만든 아내의 죄책감. 연로하고 불편한 부모를 직접 보살피지 못한 자식들의 죄책감.


가족은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십자가이기도 하다.


몇 주일을 각자의 죄책감 들 속에서 번민을 했지만, 여전히 한 가지 길 밖에 없다는 것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엄니를 부산 정관에서 서울로 데리러 가는 문제가 남았다.


어느 평일 늦은 오후, 회사의 중요한 회의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서울역으로 나섰다. 초치기 끝에 떠나는 기차를 잡아 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가방 안에서 역 편의점에서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왔던 500ml 캔맥주를 꺼내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땅꺼미가 드리운 저녁 답, 산너머에 걸린 붉은 노을과 추수를 앞두고 누런 벼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너른 들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루며 차창 밖을 빠르게 지나갔다.


밤 8시 부산역 도착. 여기서부터 버스로 1시간 넘게 가야 할 엄니가 있는 정관으로 출발하기 전에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부산역전 돼지국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육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는 음식을 싫어하는 아내 때문에 고향 부산에 왔어도 좋아하는 돼지국밥을 먹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8시가 넘은 평일 돼지국밥집엔 사람이 없었다. 국밥과 막걸리 한통을 시켰다. 양은냄비잔이 찰랑거릴 만큼 막걸리를 가득 부었다. 맑은 국물로 유명한 이 집 돼지국밥의 국물을 한 술 떴다.


‘달짝지근 시원하며 맛나다’


벌컥벌컥 막걸리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평소 달디 단 막걸리가 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쓰다.


막걸리 한통과 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적당한 취기를 느끼며 정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도로가 한산해졌다. 버스 안에서 시골길의 굴곡에 맞춰 내 몸이 흔들렸다. 막걸리의 취기 때문인지 내 마음도 일렁였다.


철들고 평생 곁에 없었던 아들.

별처럼 바라보기만 했던 아들.

어렵고, 까칠한 아들.


그 아들이 이제 60을 바라보며 늙어 버렸고 90을 바라보는 엄니를 오늘에야 데리러 내려왔다.


세월이 흘러 흘러 기필코 마주치고야 마는 부모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은 왜 항상 신파극일까.


늦은 시각에 도착했지만 두 어른은 깨어 있었다. 내일이면 서울 가야 할 엄니의 마음이 아직도 왔다 갔다 한다. 결혼 후 공장이든, 장사든 두 양반은 평생을 같이 붙어 일을 했다. 엄니에게 남편과 떨어진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식들은 그런 엄니에게 ‘분리불안’ 증상이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어른들 집에 머물 때면 반드시 가는 동네 목욕탕에서 온천을 하고 밖을 나왔다. 그제야 새벽 그림자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가로수에 가을이 제대로 내렸다. 진홍빛이 곱게 물든 이파리를 아직 풍성히 가지고 있는 나무들과 기분 좋게 서늘한 공기.


엄니 데리러 온 날 그렇게 가을빛이 고왔다.


아들의 고집에 체념한 듯, 아니 결심한 듯, 엄니는 곱게 빗은 머리에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휠체어에 앉아서 공항행 장애인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 기사에게서 10분 뒤면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다. 살갑게 잘해 줘서 동생 같다며, 엄니의 칭찬이 마르지 않았던 새로 오신 요양보호사님이 엄니의 휠체어를 밀고, 부친은 지팡이를 집으면서 1층으로 내려왔다. 택시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여보! 우리 악수 한번 합시다. 당신, 내가 없더라도 끼니 잘 챙겨 먹고 잘 지내세요

엄마가 대뜸 그나마 움직이는 왼쪽 팔을 힘겹게 들며 악수를 청했다. 아버지 역시 왼쪽 팔을 내밀며 엄니 손을 잡았다.


60년 지기의 악수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순간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60년 지기의 인연도 끝내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항공사의 많은 인력과 시설의 도움으로 엄니를 무사히 서울로 이동시켰다. 우리를 태운 차가 요양원에 도착하자,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사회복지사와 간호사가 현관 입구에서 반갑게 엄니를 맞았다.


엄니가 곱다며 몸을 어루만지면서 칭찬하는 간호사의 미소를 보자 그제야 서울 오는 내내 굳어 있었던 엄니의 표정이 약간 펴졌다. 1층 리셉션에서 수속을 마치고, 엄니가 지낼 2층 생활동으로 이동하니, 엄니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곳에는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형태의 불편함을 가진 어른들이 계셨다.


그곳은 남편 외에 낯선이들을 마주 칠 일이 없었던 내 엄니가 살아 내야 할 ‘남편 없는 세상’이다.


간호사의 소개로 동료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엄니의 어색한 표정을 뒤로하고 떠나는 내 마음이 또 복잡해졌다


과연 잘한 일일까?


그러나, 며칠 뒤에 즐거운 일이 생겼다.


엄니 보러 가는 길


그게 새로 생겨난 즐거운 일이다.


사흘 만에 다시 본 엄니. 오른쪽 눈꺼풀이 약간 내려왔다. 그게 또 신경이 쓰였다. 잘 지낸단다. 아니 잘 지내시려고 노력하는 것일 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에 저장된 60년 지기의 악수 장면을 당겨서 확대해 봤다. 아버지가 엄니를 내려다보는 눈길. 손을 맞잡으며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엄니의 눈길.


60년 지기를 다시는 못 볼 듯이 바라보는 엄니의 눈길이 묘하게 애잔하여 내 마음을 흔들었다.


제기랄 ~ 사람 사는 게 왜 이러냐.


두 양반의 별거가 이제 3주 차로 접어들었다. 예상외로, 조심스럽지만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며칠 전, 부산이 고향인 회사 직원의 모친 상 때문에 다시 부산에 왔다. 조문을 끝내고 부친이 계시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눌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오늘 늦게 집에 온다고 했는데.


아내에게서 불러 받은 현과 비밀번호를 누르니 문이 열렸다. 거실 전등을 켜니, 장애인 침대와 휠체어가 치워져 한층 넓어지고 깨끗해진 거실. 그러나 여기엔 더 이상 엄니가 없다. 사람이 언제 살았나 싶을 만큼 절대 고요와 적막이 내려앉아 있다. 조용히 안방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다. 바로 옆에서 아무리 부스럭거려도 꼼짝을 안 한다. 그렇게 곤히 잠이 든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죽음보다 깊은 잠


엄니 수발을 드느라 고단했을 아버지의 시간이 보인다. 모든 늙어 가는 존재를 마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고 아프다.


기도한다. 이렇게라도 두 양반의 평화가 조금만 더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