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의 홀로서기
엄니가 요양원으로 이동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그 사이, 요양원 원장님, 간호사님으로부터 엄니의 컨디션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 과정을 수시로 전달받았다. 당초, 낯선 노인분들과의 낯가림 때문에 공용 거실에 나오지 않고 방에만 계실 것으로 예상했으나, 공용 거실에 다른 노인 분들과 같이 계시는 시간이 길다는 걸 전달받았을 때 의아했다.
또한, 엄니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타구니 피부병도 어깨 무릎 수술 부위의 통증과 염증을 방지하기 위해 평소 드시고 있었던 항생제가 너무 강해서 생길 수 있다는 걸, 간호사님과 출장 의사 선생님의 진단으로 알게 되었다.
자식들이 몰랐던 사실이다. 시골에서 두 노인네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얼마나 제대로 관리하면서 먹고 있는 지를 두 노인네들은 자식들이 걱정할 까봐 알리지 않았고, 자식들도 어렴풋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내려놓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미안했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젠, 누군가 매일 엄니의 상태를 점검해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주니까...
자식들 보다 나은 존재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사실 엄니가 부친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 이렇게 잘 적응할 줄 몰랐다. 처음 요양원행을 제안했을 때 엄니는 한사코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혼 후 60년 동안 단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남편, 특히, 본인이 혼자서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 5년 전부터, 본인의 팔다리가 되어준 남편과 떨어져 혼자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이 내 엄니에게는 마치 모든 인연들과 철저히 차단되는 특수병동에 수용되는 듯한 절대 공포감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분리불안
그랬다. 우리 부부는 엄니의 남편 의존증을 그렇게 자체 진단했다. 비록 엄니는 자기의 요양원 이동으로 혼자 남겨질 90을 바로 보는 남편 걱정으로 본인이 요양원 가면 안 된다고 우겼지만, 사실 본인이 남편에게서 떨어지는 게 두려운 것임을 우리는 알았다.
맏아들인 내가 고집을 부려 엄니를 자식들 욕심에 우리 근처로 모시면서도, 한 번도 살아 보지 않았던 김포, 완벽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엄니에겐 너무나 이상한 발음을 가진 노인네들 틈바구니에서 엄니가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했었다.
그래서 엄니가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엄니가 그래도 자식들 근처에 오니 좋은 것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바로, 짧은 시간이나마, 자식들 얼굴을 자주 보는 것일 테다.
장남은 매월 첫째 주말, 막내아들은 둘째 주, 차남은 셋째 주, 마지막 주는 장남이 옵션으로 한 번 더 가는 것. 삼 형제가 이렇게 엄니 보러 가는 길을 약속했다.
삼 형제의 엄니 보는 일정이 벌써 한 바퀴를 돌았다. 성격이 깐깐한 장남에겐 아무런 척하지 않았던 엄니가, 엄니 눈엔 아직도 한 없이 편안하고 귀여운 막내 동생에게는 여러 가지 힘든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다. 집이 그리운 것일테다.
어찌 그립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사지를 못 쓰지만, 시골집에서는 침대에 누워 입만 열어도 모든 것이 척척 진행되었던 ‘침대 대통령‘ 엄니였다. 부친과 요양보호사님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한평생을 속옷도 삶아서 빠셨던 엄니의 깔끔함이 사지를 못 쓰는 이 상황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홀로서기
그 엄니가 이제 60년 만에 홀로서기를 시작하셨다. 이 세상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가야할 길, 홀로서기.
막내 동생에게 어리광을 부렸다고 들었던 날 이후 어느 평일 저녁에 퇴근하면서 엄니에게 전화했다.
"할매 ! 이제 좀 적응이 되고 있는교?"
"그래, 적응하고 있다... 여기 원장님과 간호사님이 너무 좋다. 사실 우리 층 요양 보호사 한 분이 좀 무서웠는데, 자기도 경상도 사람이라서 말투가 좀 그래서 그렇다며 무서워하지 마란다. 하하"
"잘됐네.. 그래도 할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적응 못한다고 다시 집으로 가는 일은 없어요..할배가 이제 감당 못해"
"맞아.. 너 아버지도 고생이 많았다.. 이제 그만 괴롭혀야지.. 난 잘 지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자기 수발 때문에 부친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뼛속같이 알았음에도 한사코 떨어지기 싫어했던 엄니가 부친을 이제 그만 놔줘야겠다는 말이 마음에 사무친다. 그리고 고마웠다.
엄니가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오늘
모처럼 찾은 일요 미사
눈을 감고 가만히 고개 숙인다.
올해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지나간다.
나는 나 대로 새 직장으로 옮겨 좌충우돌 적응하기
내 엄니는 엄니대로 완벽히 새로운 곳에서 홀로서기
무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이 단어가 이렇게 감사할 수 없다.
주님 ~ 내 엄니에게 마음의 평화와 평정을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