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보러 가는 길 #3

어머니가 딸이야

by 불지않는 면빨

엄니가 요양원 들어간 지 그럭저럭 한 달이 되어 가고 있고 별 다른 큰 탈이 벌어지지 않아서 마음을 조금씩 놓아 가고 있었다.


별 다른 큰 탈은 엄니가 끝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소란을 피워서 쫓겨나는 상황으로, 자식들은 평소엔 어린양처럼 순하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면 앞 뒤를 재지 않는 우리 엄니의 성정을 알기에 별 다른 큰 탈이란 최악의 경우를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퇴근했는데, 휴대폰에 엄니가 떴다. 소소한 안부나 자잘한 부탁이 있는 경우 엄니의 대화 상대는 장남보다 훨씬 편한 며느리다. 나에게 전화할 땐 분명한 용건이 있는 것임을 알기에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뭔가 벼르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로 엄니의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아들아 ~ 이제 한 달 정도 되어 가는데, 아직 여기 적응이 안 된다. 난 몸은 망가졌지만, 정신이 멀쩡한데,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려고 하니, 기가 차다. 하루 다섯 번 화장실 가는 것을 부축받기 위해 집이 아닌 여기에 있는 게 맞나. 여긴 완전히 군대야... 아침 5시 기상, 7시 아침 식사, 9시 체조, 11시 점심, 2시 특별활동, 3시 간식, 5시 저녁, 8시 취침...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비록 각오하고 있었던 상황이지만, 엄니의 뼈 때리는 불평은 내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내 반응은 뾰족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엄니가 젤 멀쩡한 사람 같지만, 같이 지내는 노인네들 중 몸이 젤 망가진 사람인 걸 몰라요?.. 다른 노인네들은 보행기 도움을 받더라도 혼자 걸을 수 있고, 선생님 따라서, 팔을 들어 올려서 체조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지만, 엄니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숨 쉬고, 왼 손으로 밥 먹는 거 외엔 아무것도 없잖아요... 다른 노인네들 눈에 엄마가 제일 기가 찰 거유..."


내 말을 부엌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얼른 내 폰을 가로채서 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몸이 망가진 사람과 정신이 망가진 사람


누가 더 불행한 경우일까?


엄니를 요양원 생활동에 모셔 놓고 뒤돌아 나섰던 순간부터 이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활동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간씩 치매기가 있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그분들은 제대로 된 대화는 힘들지만,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이다. 반면, 정신이 멀쩡한 엄니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니, 마음의 지옥은 엄니가 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한참 뒤, 아내가 내 핸드폰을 돌려주며,

"그 사이, 어머님과 조금 친해지신 분이 있는데, 어머님에게 자기 먹던 김도 나눠주시고, 자식들 근황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맘을 조금씩 터 놓았던 할머니가 어젯밤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 가셨대.. 그래서 어머님의 마음이 그랬나 봐.."


아내의 말을 듣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엄니에게 건네는 내 목소리가 동그래지는 것을 느꼈다.


"엄니.. 옆 방 할머니 이야기 들었는데, 병원 가셨으니, 회복해서 오시겠지요.. 그리고, 엄니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엄니가 여기로 온 후 훨씬 맘이 좋아요. 매일 간호사가 엄니의 상태를 살펴 주고 있고,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어떤 약이 필요한지, 식사를 잘하시는지, 다른 분들과 대화를 잘 나누시는지, 수시로 나나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친절하게 엄니의 상황을 알려 주니 너무 안심이 돼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여기 좋은 점도 많아... 내가 더 적응하도록 노력하마..."


"이번 주말은 우리 부부가 가는 순서니, 며칠 뒤 봅시다. 그동안 잘 지내세요"


최악의 대화 기술을 가진 나.. 나는 왜 아내처럼 처음부터 엄니를 달래 가면서 대화를 하지 못했을까? 또 짧은 후회가 밀려왔다. 엄니와의 통화를 끊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 보다 훨씬 나아.. 아들이 잘 못하니, 당신이 울 엄니에게 딸같이 굴면 되겠네"


"당신 ~ 딸같이 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 줄 알아? 딸이 아닌데 어떻게 딸같이 굴어? 난 반대야... 어머님을 딸로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되고, 마음이 편해져... 어머님은 그냥 유치원생이야"


어머니가 딸이야~
유치원생과 요양원생


그 묘한 반어법에 아내의 사고의 전환을 느꼈고, 고마웠다.

엄니가 자식들 근처로 이동했다는 것은, 그동안 아버지가 감당했던 엄니로 인한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이 자식들에게 이전됨을 의미했다. 그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의 실질적인 담당자인 며느리.


아내의 부연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리광을 피우며,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유치원생과 요양원생. 인간의 생애 주기 중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두 세대를 등치 시키면서, 자기가 앞으로 맡아야 할 내 엄니로 인한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에 대한 각오 같은 것일 테다.




오늘은 진짜 엄니 보러 가는 날이다.

엄니가 생활동 노인네들에게 한 턱 내고 싶은 마음에 빵을 40개 정도 사 오라고 진작부터 며느리에게 부탁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빵 40개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혹시 이 호의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고, 건강하지 않은 노인분들에게 음식물을 드리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보란 듯이, 아내가 크고 묵직한 포대기를 어디선가 가져와서 열어젖혔다. 그 속엔 조그마한 카스텔라빵, 귤, 야채음료가 한 세트로 개별 포장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유치원생 딸을 위해 엄마가 유치원 행사 때 준비한 것들과 같은 모양새다.


"아니 ~ 이걸 다 어쩌려고? 원장 샘이 좋아하시겠어?

"괜찮아~ 어차피 다음 주가 어머님 생신이니, 생신 선물로 샀다고 하면 돼.. 어머님도 할머니들과 나눠 드시길 원하시고.."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요양원에 도착하여, 트렁크에서 빵꾸러미를 꺼내 낑낑거리며 요양원 1층 접견실 탁자 위에 부려 놓으니, 원장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이게 뭐냐고 물으신다. 휠체어를 탄 엄니가 요양보호사님의 도움을 받아서 탁자로 왔다. 원장 선생님은 뭘 이런 것 가져오냐며 타박하셨지만, 예쁘게 개별 포장한 것을 칭찬했고, 엄니는 짐짓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불현듯, 엄니와 같이 아버지와 페이스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휴대폰을 열어 아버지에게 페이스톡을 울렸다. 열 번 하면 한 두 번밖에 연결되지 않는 아버지와의 페이트톡 타율로 연결을 걱정했는데 웬일인지, 바로 연결되고 아버지의 얼굴이 나왔다. 그 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니로 화면을 돌렸다.


엄니가 딱 한 달 만에 보는 아버지 얼굴..


엄니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졌고, 표정은 상기되었고, 목소리는 높아졌다. 두 양반은 하루에도 서 너덧 통의 전화를 계속했는데, 마치 오랜만에 대화하는 것처럼, 화면에 서로 얼굴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있는데 이어 나가는 모습은 참 낯설다. 페이스 톡이 끝나자마자, 가족방에 아버지 톡이 바로 왔다. 무뚝뚝한 경상도 할아버지가 엄니의 세례명 '안나'를 불러 가며 어찌 이런 낯간지러운 톡을 보낸단 말인가?


'이건 도대체 뭔가? 사랑인가? 우정인가? 아님 전우애인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서로 잘 있으라며 안부를 마치고 페이스톡을 마쳤다.


이윽고, 엄니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들~ 내 틀니가 들썩거려서 인지, 잇몸이 아파서 음식 씹는 게 불편해... 어떡하지?"

"어떡하긴요 ~ 치과 가 봐야지.. 주중엔 시간 내기 쉽지 않으니, 오늘 바로 가 봅시다."


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근처 치과를 바로 예약해 주신다.


이젠 엄니를 내 차에 태우는 게 일이다. 휠체어를 최대한 차 뒷좌석에 붙이고, 원장선생님과 내가 엄니의 허리춤을 잡고 조심스럽게 엄니 엉덩이를 먼저 뒷 좌석에 걸터 붙이고, 다리를 하나씩 집어넣었다. 치과 병원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 이번에는 역순으로 반복해서 엄니를 다시 휠체어에 앉혔다.


휠체어를 밀며 치과 병원에 도착했다.


내 60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엄니를 치과 병원에 직접 모시고 왔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한다고, 직장 다닐 때는 일한다고, 엄니에 관한 모든 수고로움은 아버지 몫이었다. 엄니의 이동이 의미하는 수고로움의 이동을 실감했다.


한 인생은 누군가의 수고로움 때문에 유지된다.

수고로음은 일방적이지 않다.

엄니의 평생의 수고로움은 이미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