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보러 가는 길 #4

가족에 대한 상념

by 불지않는 면빨

요새 연예인 박수홍 씨와 친형 내외간의 소송전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세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판결을 보면 친형 내외가 오랫동안 박수홍 씨에게 정신적 금전적 손해를 끼친 것이다.


어디, 박수홍 씨뿐이랴... 골퍼 박세리 씨, 가수 장윤정 씨, 배우 최진실 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의 비극적인 가족사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연예인뿐만 아니다. 대중의 눈에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대기업 오너들의 부모와 자식 및 형제들 간의 분쟁 역시 심심치 않게 언론을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박수홍 씨의 이번 소송 전을 보면서, 가족 간의 분쟁, 즉 골육상쟁의 양태는 연예인과 재벌들은 차이가 있다. 재벌들은 그들에겐 부가 곧 권력이자 명예이므로 더 많은 부를 확보함으로써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권력욕이 본질이다. 이 권력욕 앞에는 부자지간의 혈육의 정이나, 형제지간의 우애 따위는 뒷전이다.


반면, 대부분의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인들의 가족 분쟁은 가난한 집안에서 특출 나게 성공한 자식이나 형제에게 부모나 다른 가족이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생기는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의 가족 분쟁의 양태는 좀 더 일차원적이고 비극적이다.


반면,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일본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씨 어머니가 여전히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은 강렬한 대칭점에 있다.


박수홍 씨의 소송 전을 보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


'가족은 무엇인가'

'가족은 은총인가, 십자가인가'

'아니면, 은총이기도 하고 십자가이기도 한 것인가'


가족... 처음에는 운명일 테다..

선택할 수 없는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태어나 보니, 형제들이 있었다. 부모의 삶의 궤적에 따라 자식들의 선택과 운명도 바뀐다. 비록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형제들 역시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면서 자란다. 각자의 운명은 생판 타인으로 살았던 배우자와 가정을 꾸리면서 바뀌고, 자식을 낳으면서 또 달라진다. 종국에는 부모도 형제도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


나에게 완벽한 가정의 모습은 유명한 연예인이나 성공한 기업의 오너들이 벌어들이는 큰 수입이 없더라도 부모는 자기 노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고, 형제들은 자기 가정을 건실히 챙길 수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 없이 부모 형제들 간에 합의가 잘 되고 화목하게 지내는 상태이다. 그것은 각자가 속한 또 다른 가정 즉 배우자의 가정에 똑 같이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내 주변 간혹 그런 모습의 가정을 가진 듯한 지인들이 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무척 부러운 가정이다. 간혹이란 단어가 의미하 듯이, 이런 소소한 형태의 좋은 가정의 모습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모두가 가난했던, 부모에게 태어난, 당연히 자수성가가 목표일 수밖에 없는, 자녀들의 교육에 올인해야만 했던, 치열한 경쟁으로 대부분 50세 무렵에 은퇴해야 하는, 그럼에도 사회적 안전망은 거의 미미한,



이렇게 무수히 많은 형용사들 속에서 부모, 형제, 자매 및 배우자의 부모, 형제, 자매들이 스스로 독립하는 모습을 가진 가정이 흔치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내 단골 동네 미용실이 있다. 재개발 직전의 남루한 동네에서 누님 뻘 되는 연세의 원장님이 혼자 하는 미용실이다. 단골이다 보니, 머리 깎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원장님 부친은 10년 전에 돌아가시고 구순 모친께서 서울 근교 요양원에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엄니와 비슷한 상황 아닌가?


원장님 형제가 8남매이고, 어른은 시골에서 농사 지셨단다. 여러 가지 말끝에 노모의 요양원 비용이 자식들에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단다. 시골 출신 8남매 가정이 어떻게 생활을 꾸려 왔는지 솔직히 궁금했다. 그래서 슬쩍 눙치며 물었다.


"원장님.. 8남매와 자주 보세요?"

"아니 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정기적으로 봐요.. 그래도 우리 형제들이 우애가 좋아요.. 시골 어른들이 농사짓던 논을 나중에 다 정리해서 자기 노년 의탁할 비용을 조금 챙겨 놓고 자식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내 모친 요양원 비용 역시 당신 저축으로 해결되고 있어서 딱히 형제들이 부담할 것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평범하지만 자기 앞가름하고 있고, 8 남매가 번갈아 가며 모친 돌아보고, 뭘 하자고 하면 합의가 잘 돼요.."


한 마디의 질문으로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을 다 알게 되었다. 원장님 역시, 그 연세에도 열심히 일하며 최근에 과년한 막내딸을 결혼시켰다. 이로서 두 딸에 대한 의무도 다했다. 자기는 다리 힘이 있을 때까지 미용실을 꾸리며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겠단다.


원장님의 시골 어른과 더불어 이 아름다운 가정이 실로 부러웠다.


이 화목한 가정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결국, 원장님의 부모님이지 않았을까? 농사꾼이지만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히 땅을 일구면서, 8남매를 잘 건사했고,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오히려 베풀었던 어른이 이 대가족의 구심점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자식들이 보고 배웠다




영국에서 아들이 왔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보기 힘들어진 아들이지만, 1년 한번 연말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국에서 가족이 모이기로 한 약속을 때문이다. 모처럼 세 가족이 제주도로 놀러 갔다. 제주도 역시 추웠지만, 좋은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만끽하며 완벽한 주말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요일 저녁 비행 시각에 맞춰 여유 있게 공항으로 출발하면서 렌터카 옆자리에 앉은 아들에게 내 항공사 옙을 보여 주며, 출발시각이 저녁 7:30분이 아니냐고 물었다.


"엥? 7:30분은 서울 도착시각인데?"

"뭐? 그럼 출발시각이 몇 신데?"

"6:20... 근데 연착되어서 6:40분으로 나오는데"

"............................."


머리 한대 얻어맞은 느낌으로 차 대시보드 시계를 보니 5:40이었다. 일요일 저녁 제주공항으로 가는 길은 연휴를 마치고 돌아가기 위한 차량 행렬로 가득했다. 엑설레이터를 꽉 밟고 막힘없이 질주한다면 6:20 경이면 도착해서 게이트로 바로 뛰어가면 비행기 꼬리 날개 정도는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차 앞에 온통 빨간색 리어 램프 불 빛이 가득한 상태고 무엇보다 이 렌터카를 반납해야 했다.


서울행 비행 시각을 마지막에 점검하지 않은 나의 무신경과 게으름에 대한 자책이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동시에 다음날 월요일 정시 출근 해서 참석해야 할 중요한 회의가 떠오르며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할지 몰라했다.


아내와 아들은 조건 반사적으로 바로 휴대폰을 뒤적이며 다른 항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요일 밤, 예약가능한 다른 항공편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상해를 경유해서 서울로 가는 항공편은 있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가족은 외쳤다.


"월요일 첫 비행기를 알아보자"

"있네.. 월요일 아침 6:30분 출발 비행기.. 김포 7:30 도착이네"

"그래 그거라도 예약해 놓자"


기사회생 사다리 확보로 안도의 한숨은 내 쉬었지만, 차량 반납하고, 많은 짐들을 끌고 제주시 호텔을 찾아 들어갈 생각을 아니, 마음이 영 번잡했다.


시각은 이미 물리적으로 항공편 게이트 클로징 시간 전에 도착하기는 어려운 상황. 그냥 포기하고 하루 더 묵을 호텔로 직행하기를 고민하던 찰나, 두 식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공항에 가보자고 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능한 좌석 대로 개별로 흩어져서 서울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돌아가자는 합의를 하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아들은 짐들을 밀면서 뛰었다. 나는 렌터카 반납처로 차를 돌렸다.


곧이어 휴대폰이 울리며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항공사 직원분이 남편은 알아서 자기가 보내 드릴 테니, 게이트로 무조건 뛰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잡아 주셨어... 우린 예약한 비행기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당신 비행기 좌석 확보되면 톡 주세요.."

"응... 알았으니까, 도착하면 아들과 먼저 집으로 돌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짐도 다 보냈으니, 내 몸 하나만 제주에 남았다. 비행기가 없으면, 어디든 내 몸 하나 제주에 늬울 곳이 없으랴...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렌터카 반납하고, 항공사 카운터에 도착하니, 과연 눈치 빠른 항공사 직원이 남겨진 남편임을 간파하고 1시간 뒤 비행기의 하나 남은 비지니스석 좌석을 들이민다. 이럴 때 쓰는 표현..


'눈물 나게 고마웠다'


1시간 뒤 비행기를 기다리며 다음 날 비상 항공편을 취소하고,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봤다. 택시를 나 혼자 타고 가기는 너무 아까워서, 공항철도를 거쳐서 버스로 가리라고 마음을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 가까이 되겠다 싶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베기지 클레임을 통과하는 문이 열리니,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들도 1시간 반을 김포에서 나를 기다린 것이다.




가족들과 같이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또 상념에 잠겼다.


'가족은 은총인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가'

'어떻게 해야 좋은 가정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가'


좋은 가정에는 누군가 넉넉히 베푸는 구심점이 있다.
좋은 가정에는 자신을 책임지는 생활력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있다.
좋은 가정에는 이를 위해선 어떤 일도 마다 하지 않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
좋은 가정에는 그 부모의 삶이 가훈이 되는 집이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가족에 대한 나의 상념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