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유치원
"저희 왔습니다"
"응 왔나"
현관문을 들어서는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으면서도 거실에 있는 기울기가 조정되는 병원 침대에서 힘들게 엄니가 몸을 일으켰다.
오래 누워 있어서 눌어붙은 머리칼, 기름기 빠지고 메말라 쪼글쪼글해져 버린 시든 사과 같은 볼살과 쑥 들어간 눈덩이와 흐릿한 초점. 그 대가로 얻은 항아리 같은 허리와 젓가락 같이 가늘고 오그라 들은 다리. 오랫동안 실내에 갇혀 있는 환자의 전형적이면서 기형적인 외관이다.
몇 달 만에 부산 어른집에 들어설 때면 그사이 또 변해 버린 엄니의 모습이다.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볼 때면 그냥 괜히 화가 났다. 더 이상했던 것은 윤기 하나 없는 얼굴은 부어 있었다.. 피부색도 하얗다 못해 푸른 끼를 띄고 있었다.
'하루 종일 누워 있어서 얼굴이 붓는 건가?'
마음만 아프지 별 대책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처방한 것은
"엄니! 날 따실 때 아버지나 요양사님 도움 받아 아파트 밖에 잠시라도 나가서 햇빛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세요"였다.
그게 엄니를 지금의 요양원으로 모시기 전, 부산 어른집에서의 엄니의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한 인생의 완벽히 스러져가는 모습.
요양원으로 모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양원 간호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요양원에 정기적으로 오시는 의사 선생님의 전언이라며, 엄니가 가져오신 항생제가 너무 세다며 항생제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얼굴 부기와 푸른 빛깔이 도는 피부색 역시 고농도 항생제의 장기 복용 후유증일 수 있다고 했다. 관절이 없는 오른쪽 어깨와 무릎에 여전히 감염의 후유증이 남아 있을까 봐 부산에서 두 노인네가 알아서 고농도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었듯 했다.
요양원 입소 후 항생제를 줄여서 인지, 입소 한 달쯤 지나자, 엄니 얼굴에서 부기가 빠지고 푸른 끼도 없어지는 듯했다. 이건 요양원 입소로 인한 예상치 못한 변화였다. 엄니의 요양원 이동을 잘 결정했다는 안도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주고 있는 엄니가 너무 고마웠다. 한편 부산 어른 두 양반이 평소 어떤 약을 어떻게 드시고 계셨는지 관심이 없었던 나의 무신경을 자책했다.
어느 일요일 밤
"띵 ~~"
내 카톡이 울리는 소리다. 일요일 밤 카톡을 보낼 사람이 딱히 없어서 카톡 발신자를 슬쩍 스치듯 곁눈질로 봤다.
발신자가 엄니의 요양원 간호사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나쁜 소식일 것 같은 불안한 예감으로 카톡을 열었다.
"다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뒤따라 엄니가 복도의 핸드레일을 잡고서 간호사의 구령에 맞춰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영상이 붙어 있다.
'엄니가 다리 운동을?'
'그게 가능한 일이었나?'
자세히 보니 엄니가 무릎 관절 대신 시멘트가 붙어 있는 오른쪽 다리가 아닌,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다리를 위주로 일어나고 앉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지력 박약인 울 엄니가 저런 재활 운동을 한다고"
영상을 즉시 형제들에게 공유했다. 하나 같이 엄니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이건 기적이란 말을 했다.
그랬다. 이건 분명 작은 기적이었다. 항생제 부작용으로 얼굴이 뚱뚱 부어 있었고, 스스로 뭘 해야겠다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엄니. 남편이 30분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남편에게 계속 전화를 해 대던, 분리불안 장애가 의심되었던 내 엄니가 스스로 운동을 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게 기적이었다.
동시에, 이런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요양원 분들과 요양원을 작동시키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고백건대 내 생애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한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만드는 일은 가족같이 가까운 사람만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이 아닌 완벽한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가 많고, 이 것이 사회룰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60년 지기 남편 없는 바다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엄니의 홀로서기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생초보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딱 한 달이 되었다. 초급 1단계 마지막 주말 수업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처음으로 나 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가까운 여성분이 참여했다. 갑자기 든 생각, 나와 이 여성분은 왜 이제와 일본어 수업을 듣고 있는가?
태어나서 걷기 연습을 하고 말을 배우고 공부를 해서 한 인간이 사회적으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시점이 인생의 피크일 것이다. 피크를 지나서 인간의 생애는 다시 어릴 적 모습으로 되돌아가면서 종국에 자연으로 회귀하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나와 여사님이 배우고 있는 일본어는 어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배우는 '철수야 놀자' 같은 왕초급 국어를 배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아내는 요즘 부쩍, 할머니들을 아침에 깨워서, 양치질시키고, 밥을 먹이며 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서 공동 놀이를 하는 요양원은 그 자체로 유치원과 다를 바 없고, 엄니 역시 유치원생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어릴 때 유치원을 가 본 적 없는 우리 엄니가 이제야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거야"
그렇게 나와 내 엄니는 어릴 적 시절에 했던 일을 이제 다시 하고 있다.
인생은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