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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Mar 24. 2024

겨울과 봄의 길목

   완연한 봄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겨울과 봄의 교착점. 봄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하고, 남쪽에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필자의 생일이다. 아침이 되자 생일축하 톡이 쉴 새 없이 날아온다. 톡을 받고 나서야 생일인 줄 알았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힘든 산고를 겪으시고 낳아주신 어머니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명절과 생일도 잊고 산지 오래되었다.

  생일이라고 친구와 지인들이 커피와 케익 쿠폰을 보내주는 것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커피와 케익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받으면 갚아야 하는 마음의 빚을 지는 것도 싫다. 쉽게 말해 신경 쓰기가 싫어서 고마움보다는 불편함이 앞선다. 쿠폰을 받고도 사용하지 않아 기간이 지난 것도 있다. 자잘한 쿠폰을 날리는 것은 경제적이지도 않고 낭비가 분명하다. 또한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받고 고맙다고 건조한 답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진심을 담아 생일축하 톡이면 충분하다.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생일모임도 했었다. 서로 생일을 챙겨주며 선물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 날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자잘한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다 보면 워킹 맘에게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니 친구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어느 날 보니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었다. 거기서 오는 공허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산 줄 알았다. 사실은 쭉정이는 하나도 없고 알곡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세월이 갈수록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는 것도 귀찮다. 그냥 좀 편하게 살고 싶다. 그동안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았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앞으로 남은 시간은 진정한 나를 만나 쓸쓸한 영혼을 위로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바람처럼 물처럼... 쌀쌀한 봄바람이 얼굴을 만지고 지나간다. 덕분에 귀와 얼굴이 얼얼하다.

  어쨌든 오늘이 생일이니 미역국을 끓였다. 출장이 잦은 아들이 미리 준 돈으로 샴페인도 한 병 사고, 여행 다니면서 식사가 번거로울 때 먹으려고 차 트렁크 속에 넣어둔 비상식량인 초코파이를 꺼내와 촛불도 켰다. 혼자만의 생일상을 차려 어머니께 감사하며 미역국을 먹는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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