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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May 05. 2024

바람이 전하는 말

  내 어릴 적 동무는 가난한 집의 장남인데 늘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그의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에다 폭력을 일삼았고,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다. 영혼이 피폐하고 슬픈 그는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몸은 나이보다 작고 왜소했다. 정서가 불안정해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늘 주눅이 들어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다녔다.

  학교 가는 날보다 일하는 날이 더 많았고, (월사금이 없어서) 아버지한테 맞아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한겨울에 양말도 안 신고 맨발로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고 동생들도 챙겨야 했다. 집이 가난해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의 어머니가 힘들게 날품을 팔아 겨우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의 형제들은 항상 배가 고파 허기에 시달렸다. 동네 사람들은 늘 말했다.

  “에고, 귀신은 뭐하는지 몰러. 저런 인간을 안 잡아가고. 대복이 엄니 불쌍해서 워쪄. 쯧쯧.”

  그의 아버지가 약주를 마시는 날이면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술이 깰 때까지 동네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집에 가서 살림살이를 부수고 가족들을 닥치는 대로 폭행했다. 그는 가끔씩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동생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도망을 와 사랑채에서 밤을 보내고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다가 우리 집에 들러 필자에게 쥐약이 있으면 달라고 했다. 쥐를 잡으려고 달라는 줄 알고 집에 있는 쥐약을 챙겨줬다. 그런데 그는 쥐약을 받자마자 주전자 뚜껑을 열고 막걸리에다 전부 쏟아부었다. 순간 필자는 깜짝 놀랐다.

  “야, 대복아, 니 미친 나? 쥐약을 와 막걸리에다 타고 그라노?”

  “울 아부지 이거 묵고 죽으라꼬. 안 그라믄 울 어무니랑 동상들 다 맞아 죽는다.”

  필자는 너무 놀라 발을 동동거리며 언니와 오빠를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방금 전에 그가 한 행동을 일러바쳤다. 오빠는 그의 손에서 강제로 주전자를 빼앗아 막걸리를 땅에 쏟아버렸다. 주전자 속 막걸리는 쥐약과 혼합이 되어 어느새 진한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우리는 너무 무섭고 겁나서 변해버린 막걸리 색을 바라보며 한참을 오들오들 떨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바람을 심은 자는 태풍을 거둔다고 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린 아들은 맞아 죽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마시는 막걸리에다 쥐약을 탔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태어나자마자 천국보다는 지옥을 먼저 경험한 그는 하늘이 맺어준 천륜이라는 고리를 그렇게 끊어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직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의해 자신이 한 행동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그 뒤로 그는 죄책감 때문인지 어느 날 집을 나가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살아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가 집을 나간 뒤로도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술주정을 하며 그의 어머니와 남겨진 어린 동생들을 폭행하고 살림살이를 부쉈다. 난 참아 막걸리 사건을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했다.

  뉴스에서 아이들이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어릴 적 동무를 생각한다.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 하고. 그런데 얼마 전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불쌍한 내 동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나 세상 살기가 버겁고 힘들었으면 젊은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까. 이럴 땐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고, 신도 없는 것 같다. 황천길 가는 길은 순서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엔 순서대로 가야 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이 바뀌어도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동무처럼 가정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줄지 않고 늘어만 간다. 결국,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것은 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 인권에선 ‘모든 어린이는 호보 받을 권리가 있다.’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는데 말뿐이고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은 식물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토양과 물, 햇빛만 있으면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길러낼 의무가 있고, 세상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다. 짐승도 자기 새끼는 귀히 여긴다. 하물며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자신도 없으면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지 않은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자식은 없다.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정서가 불안정해 성인이 되어서도 안정된 삶을 살기가 어렵다고 심리학자들은 전한다.

  바라건대 지난날 내 동무처럼 더 이상 어린 영혼들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불행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지 않기를 바라며, 내 동무가 그곳에서 부디 편히 잠들기를 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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