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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효과 만점

by 루아 조인순 작가



교차로를 통과하려면 아직 30미터 정도 남았는데 신호에 걸릴 것 같아 정차하기로 했다. 백미러로 뒤를 보니 빠르게 달려오는 차가 있어 비상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줄이며 교차로에 차를 세웠다. 뒤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무섭게 달리던 차들은 신호등에 걸려 콧방귀를 팍팍 뀌어대며 복종 아닌 복종을 하듯 눈을 치켜뜨고 교차로에 납작 엎드려 있다.


건널목에 파란불이 켜지자 차 앞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지나간다. 횡단보도 건널목을 건너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신호등이 깜빡이자 저쪽에서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엄마가 어린애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끌려가다시피 해 신발이 벗겨져 뒹군다. 아이 엄마는 그 신발을 다시 주워 정신없이 다시 뛴다.


할머니는 자벌레처럼 느리게 가면서 뛰는 시늉만 한다.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불나방처럼 무리하게 깜빡이는 신호등에 뛰어드는 걸까? 벌써 중간도 건너가기 전에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었다. 뒤에서 차들이 빵빵댄다. 내 차가 그대로 출발하면 뒤차들은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달릴 것이다.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죽은 자가 건너가는 삼도천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건너가는 건널목이 한순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이 될 수도 있다. 차든 사람이든 정석대로 신호에 따라 움직이면 무탈하겠지만, 무리하게 깜빡이는 신호등에 뛰어들어 건널목을 건너다보면 자칫 황천길이 될 수도 있다. 간신히 횡단보도를 건너간 할머니의 표정은 민폐를 끼친데 대한 미안함보다 주목받고 보호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의 심리는 참으로 이상하다. 눈앞에서 엘리베이터가 닫히거나 신호등이 깜빡이면 무조건 뛰고 본다. 촌각을 다툴 만큼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뛰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조급증 때문이다. 그래서 저승길은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연로하신 어른들이 깜빡이는 신호등에 뛰어들어 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남아도는 것이 시간인데 안전하게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


사회의 관습적 통념에 따라 내가 어른이고 노인이니 너희들이 나를 공경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이기심과 의타심이 내재해 있을 것은 아닌지. 살아온 세월만큼 여유를 갖고 깜빡이는 신호등을 보고 무리하게 뛰어드는 일은 자중했으면 한다.


어린애 손을 잡고 뛰어가는 젊은 엄마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교통법규 위반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스릴 있고 리얼하게 학습효과 만점이다. 지난날 어머니와 내 모습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철길 건널목을 무리하게 건너고 나서 “니는 당최 혼자서 이라믄 안 된 당께! 알아듣제?” 나도 똑같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깜빡이는 신호등을 무리하게 건너고 나서 “넌, 절대로 혼자서 이렇게 신호등을 건너면 안 돼! 알았지?” 유치원생인 아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까만 눈망울로 나를 쳐다봤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정석으로 배운 교통법규를 엄마 때문에 혼동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무의식중에 아들에게 사는 방법이 아닌 빨리 죽는 방법을 먼저 가르쳐준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끔찍한 학습이었다. 그것도 지름길을 알려주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훈계했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사진 장기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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