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할 때도 먹지 않았던 콩밥을 나이 들어 먹으려니 고욕도 이런 곤욕이 없다. 이제부터는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 검은콩이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한다. 정말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침부터 콩밥을 해 먹으려고 하니 입안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예전에 쌀이 귀해서 잡곡밥을 먹는 집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싸우다가 툭하면 그랬다.
“너, 콩밥 먹고 싶냐? 당신 그러다 콩밥 먹을 줄 알아! 콩밥을 좀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이렇게 콩밥의 의미가 좋은 의미가 아니고 무서운 의미였다. 콩밥은 나쁜 짓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 벌을 받는 사람들이 먹는 밥이라는 인식이 있어 우리들은 콩밥을 무서워했고, 잘 먹지 않았다.
요즘은 쌀보다 잡곡이 더 비싸다. 제일 흔한 것이 쌀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교도소에서도 콩밥 대신 하얀 쌀밥을 먹는지 콩밥의 의미도 바뀌었다. 가끔 드라마에서 보면 건달 역을 맡은 사람들이 그런다.
“나라 밥 좀 먹고 왔지. 저는 나라 밥 먹는 사람입니다.”
교도소서 콩밥을 안 주고 쌀밥을 줘서 시대에 따라 그렇게 의미가 바뀌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밥에만 쌀밥이 올라갔다. 할아버지가 밥을 조금 남겨주시면 우리들은 한 숟가락씩 나누어 먹으며 쌀밥의 냄새에 환장했다. 그 귀한 흰쌀밥이 이젠 천덕꾸러기라니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어쨌든 콩밥을 이젠 교도소가 아닌 일반인인 우리들이 먹는다. 일명 건강 밥상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일 때는 돌멩이를 씹어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는데 이젠 조금만 먹어도 속이 부대끼고 괴롭다. 특히 콩밥은 더 그렇다. 콩밥을 먹은 날에는 가스가 나온다. 생리적인 현상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민망하고 부끄럽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샐까 봐 약속이 있는 날에는 콩밥과 콩자반을 먹지 않는다.
예전엔 어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붕붕 귀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갔다. 어린 우리에겐 이래라저래라 훈계를 하면서 정작 어른인 자신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모두 그렇게 예의도 없고, 부끄럼도 없고, 막살아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상하게 살고 싶어도 노화된 몸이 거부를 하는 것이다. 몸의 모든 기능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고상하고 우아한 것은 물 건너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망하게 생리적인 현상들을 제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간 난 이제부터 이 콩밥을 죽을 때까지 먹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지간하면 안 먹고 싶다. 잘 넘어가지도 않지만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자꾸만 나와 민망하다. 나이가 들어도 우아하고 고상하게 늙어가고 싶은데 조상님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