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물결이 출렁거리는 오월의 어느 날 새벽을 활짝 열고 차를 몰아 봉정암에 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는 길이 험해 인연이 닿아야만 갈 수 있고, 아무나 갈 수 없다고 해서 큰맘 먹고 갔다.
연무가 뿌연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백담사까지 가는 버스에 오르니 아침 8시가 조금 넘었다. 아침이라 바람은 좀 차가웠지만 서늘함이 온몸을 긴장시켜 좋았다. 산새 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아침이다. 이곳에서 듣는 새소리는 좀 다른 것 같다. 느낌 때문인지 도시에서 듣는 새소리보다 더 맑고 경쾌하게 들린다.
백담사 가는 버스는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산허리를 구불구불 돌아 한참을 올라갔다. 백담사 주차장에 내려서 계곡을 따라 걸으며 아침으로 주먹밥을 먹었다. 아침인데도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봉정암에서 밤을 보내고 내려오는 것 같다.
그들은 힘내라고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힘들게 올라가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은 무슨 염원을 부처님께 부러 놓고 왔을까. 그리고 난 또 무슨 염원이 그렇게 깊어 밤잠을 설치며 새벽길을 달려 이 험한 산길을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헐떡이며 힘들게 오르는 것일까. 아침 햇살이 눅눅한 몸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의문은 의문을 품고 발길을 재촉했다.
푸르른 5월의 실록은 마음을 가볍게 했지만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다리가 아팠다. 초행길이라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몰라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 보니 다리에 무리가 갔다. 빠른 걸음으로 5시간을 가야 하는데 걸음이 늦어져 산속에서 밤을 지새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제 겨우 3시간가량 왔는데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이 몸속에 있는 수분과 염분을 모두 증발시켜버렸는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잠시 계곡의 시원한 물에 손수건을 적셔 땀을 닦아 봐도 소용이 없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부처님께 올리려고 가져간 쌀 1킬로의 무게가 천근이 되어 큰 바위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지친 몸을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람쥐들이 다가와 간식을 달라고 한다. 먹던 것을 조금씩 떼어 주니 간식을 받아 눈앞에서 정신없이 먹는다. 신기하게도 이곳 다람쥐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다람쥐들이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에게 길세를 받고 있었다. 간 큰 녀석들이다.
잠시 쉬었다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해서 겨우 깔딱고개 앞에 서니 앞이 캄캄했다. 저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다리가 무거워 움직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깔딱고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쳐다만 봐도 어질어질하고 현기증이 났다.
어느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내내 이 깔딱고개를 넘어 봉정암에 기도를 드리려 왔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다리에 힘이 없어 더 이상 이 깔딱고개를 넘을 수 없는 할머니를 아들이 업고 고개를 넘어 봉정암에 온다고 한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난 그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할머니가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젊어서 이곳을 그렇게 많이 찾았다면 그것은 부처님께 복을 받은 것인데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지 굳이 아들 등에 업혀 이 험한 고개를 넘어 꼭 이곳에 와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젊은 아들은 어머니께 효를 다하기 위해 행하는 행동이겠지만, 아들의 무릎은 서서히 절단이 나고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알이야 한다. 뭐든지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깔딱고개를 올라가는 내내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기어서 올라갔다. 아차, 하는 순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간신히 올라간 봉정암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바글바글했다.
특히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그 험산 산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신기했다. 속으로 내심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나도 올라오기가 힘들었는데 저분들은 어떻게 왔을까. 땀을 많이 흘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신기하게도 봉정암에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나니 머리가 맑아져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5월인데도 물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서둘러 가져 간 쌀을 부처님께 올리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힘든 고개를 넘어오면서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모두 사라진 것 같다. 부처님께 부려놓으려고 지고 간 무거운 짐들이 가벼워져서 새삼스럽게 주절주절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저 마음속 도량에 등불 하나 켜놓고 나 자신을 비워가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기도란 그런 것 같다. 먼저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