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by 루아 조인순 작가

난 일을 하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생각할 일이 생기면 휴일에는 산을 찾았다. 산길을 홀로 걸으며 한 주 동안 힘들었던 일이 있으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그 이유를 찾고, 다시 시작할 한주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산은 이렇게 고요와 함께 내면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집 근처에 산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집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모락산 초입에 들어선다. 383미터의 모락산은 크지도 작지도 않아 부담 없이 산행을 하기에는 딱 좋은 산이다. 작년에 모락산 둘레길이 완공되었다. 모락산 둘레길을 완주하려면 빠른 걸음으로 4시간이면 된다.


다른 산과 달리 모락산은 의왕시 도심 속에 위치하고 있어 주민들이 산자락 사이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어느 쪽으로 가든 길을 잃을 일은 없다. 또한 안양과 경계에 있어 안양시민들도 많이 이용한다. 산을 찾아 멀리 갈 필요 없이 조금만 걸으면 사계절을 볼 수 있어 부자가 된 것처럼 좋다.


모락산은 벌써 연둣빛 옷을 벗고 진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돌탑과 엄지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산정엔 아직 밤꽃이 피어 있어 지나갈 때마다 밤꽃향이 진하게 난다. 코스모스를 닮은 노란 금계국도 몇 송이 폈다. 벌들이 금계국과 열애 중이라 앵앵된다.


산정 옆에 자그마한 과수원이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내가 본 것이 거의 20년이 되어가니 그전부터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처음에 산정에 올랐을 때 신기했다. 사람들도 올라오기 힘든데 어떻게 이런데 과수원이 있을까 하고. 가끔 지나가면서 보면 아저씨가 과수원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잘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봄이면 이곳에 복사꽃이 예쁘게 핀다. 올해도 어김없이 복사꽃이 피더니 구슬만 한 복숭아가 햇볕을 받으며 대롱대롱 매달렸다. 계절은 이렇게 빠르게 변화를 거듭한다.


지난주에 산행을 하다가 산 벚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버찌와 산딸기를 따먹었는데 6월 하순이 지나고 있어 여름이 깊어간다. 엊그저께 꽃이 핀 것 같은데 벌써 도토리나무에 콩알만 한 도토리가 달렸다.


봄 산은 벌레들의 천국이다. 연약한 잎이 돋아날 때 종들은 번식하고, 그 잎들을 갉아먹으며 애벌레들은 성장해 성충이 된다. 새들도 그 시기에 맞게 산란한다. 벌레가 많아야 새끼들을 굶기지 않고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 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 있다. 수많은 벌레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면 꼭 벌레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 위에서 줄줄이 내려와 눈앞에서 인사를 하던 애벌레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살아남은 벌레들은 성충의 모습으로 변해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숲 속 여기저기서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어미 새는 어린 새끼들을 키워내느라 여념이 없다. 사람 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산속의 새들도 자식을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어미 새들은 허리가 휜다. 산길을 다가 보면 겁이 많은 꿩들도 가끔씩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산길을 조용히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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