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

by 루아 조인순 작가

사람들은 누구나 종교가 있든 없든 삶의 굴곡이 생기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신을 찾는다. 그만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든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유동적인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신 아버지는 불심이 깊어 스님들의 공부도 봐주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해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 필자를 데리고 절을 자주 찾았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칭얼대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갔다. 그렇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교는 어느새 나의 신앙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엔 크리스마스이브 때만 되면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듯, 부처님을 배신하고 사탕과 과자를 많이 준다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교회에 갔다. 뇌물에 현혹되어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느님께 기도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젊은 날에는 친구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보고, 근사하고 뭔가 있어 보여 성당에 갔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미사포를 쓸 수 없다고 해서 수녀님이 가르쳐준 대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 아녜스라는 세례명도 받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그렇게 종교순회를 다니면서 여린 마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태신앙을 멀리하고 다른 종교를 믿어서 그러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모태신앙으로 돌아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죽어라 절만했다. 막상 기도를 하려니 부처님께 검은 속내를 들킬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절집을 드나들면서 양심이라는 놈이 출장을 갔는지 조금씩 뻔뻔스러워졌다. 종교란 우선 자기 자신을 비워가는 것이 먼저인데 그게 아니었다. 부처님께 아무것도 맡겨놓지도 않고 뭘 달라고 맨 날 졸라댔다. 부처님을 빚쟁이 취급했다. 욕심이 과해 하늘을 찔렀다. 유년의 그 해맑고 순수한 마음은 어디로 가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닌데 심연에 검은 때가 덕지덕지 껴서 천박하고 역겨웠다.


굴뚝새가 둥지를 틀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작은 나뭇가지 하나면 되고, 새들은 날아가다 목이 마르면 강에 내려와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되듯 사대육신이 멀쩡한 것만도 축복인데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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