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고구마

by 루아 조인순 작가

낮이 가장 긴 하지가 지나자 여름의 선물인 하지감자가 시장에 나왔다. 감자를 좋아해 매년 한 박스씩 산다. 감자가 배달돼 오자마자 오븐에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감자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포슬포슬한 감자를 한입 베어 무니 오감을 자극해 행복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진다.


‘음, 맛있어. 이 맛이야!’


예전에 고향집에선 여름밤에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았다. 매캐한 모깃불 연기를 맡으며 평상에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있으면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시작된다. 언니는 모깃불 속에 감자를 넣어 두었다가 익으면 꺼내 주곤 했다. 뜨거운 감자를 호호 불어가며 먹었는데 참 맛있었다. 감자를 먹는 우리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다음에 크면 감자 같은 사람은 되지 말고, 꼭 고구마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할머니, 감자가 이렇게 맛있는데 왜 감자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돼?”

“으음, 그것은 말이다. 감자는 하나가 썩으면 그곳에 있는 모든 감자를 다 썩게 한단다. 하지만 고구마는 썩어도 저 혼자만 썩지 다른 고구마를 썩게하지는 않는단다. 그러니 넌 꼭 고구마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할머니가 감자와 고구마의 성분을 정확히 알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얻은 경험을 손녀에게 말씀하신 것이겠지 싶다. 삶의 철학이 배어있는 말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감자 먹을 때만 되면 문뜩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과연 지금까지 살면서 감자 같은 사람일까? 고구마 같은 사람일까?’ 하고. 다만 고구마 같은 사람은 못 되더라도 감자 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가 나의 삶의 방식이니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감자는 안데스 산맥에서 잉카인들의 식량이었고, 그 후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뿌리가 땅속에 묻혀있어 유럽에서는 악마의 식물이라고 배척했지만, 기근이 들었을 땐 식량 대용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순조 때 들어왔다고 한다.


봄에 얼었던 땅이 녹아 감자처럼 포슬포슬해지면 씨감자를 잘라 짚을 태운 재를 묻혀 심는다. 잘린 부분이 부패되지 않도록 살균처리를 하는 것이다. 여름이 깊어갈 때쯤 감자 꽃이 핀다. 자주색 감자는 자주색 꽃이 피고, 흰 감자는 흰색 꽃이 핀다. 고구마도 마찬가지다. 하얀 감자 꽃이 피면 여름이 깊다. 쌀이 귀한 여름이면 보리밥에 감자를 얹어 감자밥도 해 먹고,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 새참으로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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