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모든 곳에 함께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 어머니는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친모가 화장실에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건 엄마가 아니고 악마가 아닌가 싶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어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엄마의 품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우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숙고해 본다.
나의 유년시절은 엄마의 부재로 결핍이 심했다. ‘엄마’라는 그 단어만으로도 눈물이 먼저 나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슬픔이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고통이었다.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계모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옛날 어느 마을에 장돌뱅이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둘이 살았다. 홀아비는 장사를 나갈 때면 며칠씩 집을 비워야 했는데 혼자 있는 아들이 걱정돼 새로 장가를 들었다. 새로 맞은 부인은 아들한테 지극정성이라 자신이 낳은 아들처럼 대했다. 장돌뱅이는 안심하고 장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아들은 점점 야위어갔고,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장돌뱅이는 장사를 나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숨어서 집안을 감시했다. 장돌뱅이가 장사를 나간 것을 확인한 새엄마는 아들을 방으로 데려가 아들의 정수리에서 주사기로 피를 한 바가지씩 뽑았다. 아들의 피를 전부 뽑아 말려 죽일 작정이었다. 아들은 계속 “엄마, 아프니까 살살해, 아파.”를 반복했다. 장돌뱅이는 이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계모를 내쫓고 아들과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야기처럼 진짜로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때문에 새엄마는 늘 공포의 대상이었고,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지가 외출하고 나면 혹시나 새엄마가 내 정수리에서 주사기로 피를 뽑지나 않을까 두려워 불안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는 참 많이 영혼이 슬프고 불행했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이 결핍된 관계로, 결혼해서도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지 몰라 엄하게만 키웠다. 사랑을 많이 줘야 하는데 많이 주지 못했다. 일하느라 바빴고, 만약에 나처럼 세상에 혼자 남겨질지도 모를 아들의 안위만 걱정돼 세상사는 법부터 가르쳤다.
어쨌든 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부모가 되면 안 된다. 친엄마라고 해서 꼭 좋은 것만도 아니고, 새엄마라고 다 나쁜 것만도 아니다. 바라건대 세상에서 가장 존경 받고 아름다운 엄마라는 이름으로 어린 영혼들을 슬프게 하지 않기를….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나와 같이 결핍된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