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좌충우돌 상하이

by 기하소

친정 엄마가 환갑을 맞아 우리 가족은 어떤 선물을 드릴지 고민하다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동남아는 비행시간이 5~6시간으로 너무 길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을 고려했는데, 부모님은 최근 일본의 지진 소식 때문에 불안해하셨다. 여행 내내 걱정할 것 같아 결국 중국을 택했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남편이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상하이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곳이 더 익숙했고, 여행도 훨씬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사는 우리는 직항으로 푸둥공항에 갈 수 있어 주저 없이 상하이로 향했다. 추석 연휴라 여행객도 많고 비용도 적지 않았지만 여행은 순조로웠다. 중국어를 잘하는 남편 덕분에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일도 편했고,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긴장되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계셔 한결 든든했다.


중국에서는 위챗페이를 거의 필수처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지고 있던 현금을 위챗페이에 넣기로 했다. 남편이 유학 시절 사용하던 중국 계좌가 있어 그 계좌만 살리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 호텔 근처에 은행이 있어 어렵지 않게 계좌를 복원했고, 우리는 안심한 채 여행을 이어갔다.


그런데 위챗페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다음 날 바로 은행으로 향했다. 계좌 자체는 살릴 수 있었지만, 사용하려면 남편이 과거 중국에서 유학했다는 것을 한국 영사관에서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결국 예정되어 있던 디즈니랜드 일정을 미루고 영사관으로 가야 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계좌가 그렇게 쉽게 활성화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에 계획이 잡히면 반드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끝까지 말리지 못했다. 현금을 거의 다 넣어버린 탓에 사용할 돈이 부족해지고 일정까지 틀어지자 남편은 가족들에게 미안해했다.


부모님은 “여행이란 게 이런 일도 있어야 더 기억에 남는 법”이라며 웃어넘기셨지만, 나는 남편에게 ‘그러게 내 말 좀 들으라니까’라며 타박을 하고 말았다. 순간 욱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렸다. 남편은 내 비난에 더 작아져 ‘내가 여행을 망쳤다’며 사과했다. 사실 여행을 망친 건 나였다. 내가 화를 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것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겼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환전해 온 돈을 쓰지 못하고 비상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던 것. 큰돈도 아니었는데, 그런 이유로 화를 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다행히 남편은 영사관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은행에서 돈을 다시 되찾았다. 다시 일정을 되찾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는데, 이번에는 엄마 여권번호가 잘못 입력되어 입장이 지연됐다. K를 X로 잘못 입력한 단순한 오류였다. 그래도 이번엔 웃어넘길 수 있었다. 앞서 화를 낸 전적이 있어, 이번에는 어떤 불만도 비난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디즈니랜드를 충분히 즐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멀미가 심해 저녁을 먹지 못했다. 아이를 넓은 중국 땅에서 혹시 잃어버릴까 긴장했던 탓인지, 목 근육까지 굳어 편히 움직이기 힘들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쉽지 않다고들 했는데, 실제로 가장 힘들었던 건 생활 리듬의 차이였다. 부모님은 오랜 습관처럼 새벽 6시면 눈이 떠지셨다. 호텔 커튼 사이로 아직 햇빛도 들어오기 전인데도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계셨다. 7시가 되면 카톡으로 “일어났니?”, “우리 먼저 내려가 있을까?” 같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알림 소리가 울릴 때마다 부모님이 방 앞을 서성이는 대신, 조심스럽게 건네는 배려가 느껴졌다. 우리를 재촉하려는 마음보다, 하루를 길게 쓰고 싶은 부모님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반면 우리는 육아와 일상에 지친 몸이라 아침마다 천천히 일어나고 싶었다. 부모님의 카톡을 보며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시간을 아까워하시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됐다.


여행이 이틀, 삼일 지나면서 체력 차이는 더 확연해졌다. 부모님은 아침 산책을 다녀온 후에도 또 다른 명소를 가자며 의욕이 넘치셨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여기까지 왔는데 더 봐야지”라며 걸음을 재촉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오후 3시만 지나면 슬슬 방전되어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어졌다. 부모님은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조금만 더 둘러보자”라고 하셨다.

그 말속에는 ‘언제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르니까, 지금의 시간을 최대한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그 마음을 알기에, 피곤해도 최대한 걸음을 맞췄다. 더 천천히 걷고 싶어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곳이라면 한 번 더 가보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면 더 예쁘게 찍어드리려 노력했다. 지금 보내는 시간이 단순한 여행 일정이 아니라, 부모님이 앞으로 오래 기억할 함께한 시간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환갑 여행을 다녀오니 자연스레 어머님도 생각났다. 엄마와 어머님은 동갑이시고, 나에게는 두 분 모두 중요한 어른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내년 1월에는 어머님과도 꼭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이 여든이 되기 전까지, 편하게 걸을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가능한 한 자주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이번 여행이 엄마 아빠에게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이번 여행은 부모님의 시간과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준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은 완벽하지 않았다.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치 못한 변수도 많았고, 나의 감정 조절도 아쉬운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런 순간들 때문에 오히려 이 여행이 더 ‘우리 가족의 여행’ 같았다. 누군가는 실수하고, 누군가는 화를 내고, 또 누군가는 그걸 다독여주면서 여행이 마무리 됐다.


여행을 준비할 때는 ‘좋은 곳에 가는 것’만 생각했지만, 막상 여행은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보내느냐가 더 중요했다. 부모님이 계셔서 든든했고, 남편이 있어서 수월했고, 아이와 함께라 더 특별했다. 갈등도 생기고, 예상치 못한 일들로 헤매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우리 가족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환갑을 맞았지만 여전히 씩씩하고 활기찼고, 아빠는 그 옆에서 조용히 우리를 챙기셨다. 남편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려 애썼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마음에 담으며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이 여행을 떠올리면, 계좌를 살리겠다고 고집부리던 남편도, 여권번호 하나 때문에 웃음이 터졌던 순간도, 부모님이 새벽마다 보내오던 “일어났니?”라는 카톡도 모두 우리 가족의 따뜻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또 여행을 가게 되더라도 이런 작은 사건들이 쌓여 더 깊은 기억이 될 것이다.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여행이었다.


이번 상하이 환갑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밝게 남아, 나중에 다시 꺼내보았을 때 모두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