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은 옛말이지만..
월급을 받으면 내가 꾸준히 하는 일은 바로 적금 들기이다. 꼭 써야 하는 돈을 제외하고 남은 금액은 다시 쪼개고 또 쪼개어 저축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장기 적금이 부담스러워 1년 단위 적금을 주로 들었다.
그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일 때면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과 함께 자존감이 올라갔다.
그건 내 고생과 노력이 모여 있는 흔적 같았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조용한 증거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적금만으로 큰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안 쓰고 모으면 1억”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1억이 큰돈 축에도 끼지 못한다. 물가는 치솟고 돈의 가치는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복권을 사도 1등 당첨자가 여럿이고, 당첨금이 20억이라 해도 괜찮은 집 한 채 값이 10억 가까이니 ‘복권 한 장으로 미래가 바뀌는 시대’도 끝난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적금을 계속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금 만기가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돈을 모아 중요한 곳에 쓸 때면 내 노력이 가치 있게 쓰이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엄마 친구들이 제주로 놀러 온다고 했는데, 숙소를 잡지 않고 엄마 집에서 자겠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60이 넘으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고, 연금 혜택도 없는 사람들은 여행 오는 것조차 부담”이라고 했다. 안 쓰고 모아두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한다는 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막연한 걱정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감각 있는 어린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면 순식간에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 분야다.
40이 넘으면 경제활동이 끊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요즘 남편과 경제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도 이런 불안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배운 건 ‘안 쓰고 저축하기’뿐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이제 정말 옛말이 되어버렸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 방법밖에 몰랐다.
주식은 겁이 나고, 새로운 방식의 투자는 도전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티끌이 태산이 되지 않더라도 티끌을 모으는 마음가짐은 여전히 나를 지탱해 준다.
적금이 큰 부를 만들지 못한다 해도, 적금을 들며 버텨온 시간은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적금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계속 살아갈 힘을 모으는 방식’ 인지도 모르겠다.
태산은 아니더라도, 나는 이번 달도, 다음 달도 내 방식대로 작은 티끌을 모아 나를 지키며 살아가려고 한다.
적금이 더 이상 태산을 약속해주지 않아도, 내가 쌓아가는 적금은 결국 나를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또 다른 산이 되기 때문이다.
15일은 월급날인데 주말이라 금요일에 월급이 들어왔다. 이번 달은 급여가 올라 적금을 더 할 수 있게 됐다.
그래! 많은 돈이 아니어도 차곡차곡 쌓아보자.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조금 더 생긴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