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좋아

주말마다 국수투어

by 기하소


면을 좋아하는 나는 주말 점심이면 늘 국수집을 찾아다닌다. 겨울엔 따뜻한 국물이 있는 국수를, 여름엔 새콤한비빔국수를 먹는다.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아하는 건 제주식 고기국수다.

뽀얀 국물 위에 수육 고기가 올라간 그 국수는, 어릴 적 잔칫날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나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쁜 부모님 대신 나와 동생을 돌봐주셨다.

마을에는 늘 크고 작은 잔치가 있었고, 그때마다 마을회관에서는 국수를 삶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경로당에 가면 “국수 먹으래 와시냐” 하시며,

수육 고기가 듬뿍 얹힌 고기국수를 내주셨다.


국수를 호로록 먹고 있으면

국물이 모자란 것 같을 때는 국물을 더 부어주시고,

면이 부족해 보이면 한 움큼 더 풀어 넣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마을 잔치가 좋았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익숙한 삼촌이 장가를 가거나,

친구의 할머니가 환갑을 맞이하거나,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면 꼭 할머니를 따라가 국수를 얻어먹곤 했다.


그렇게 정이 담긴 국수라서일까.

국수를 먹고 나면 다른 음식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포만감이 밀려온다.

국물이 가슴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스며드는 듯한 느낌.


할머니, 할아버지는 감귤 농사를 지으셨다.

새참 시간에도 국수를 삶아 주셨는데,

귤을 따러갔다기 보다는 추운 겨울날, 감귤밭 한켠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먹던 그 국수는 유난히 맛있었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를 마치며 도시로 이사 갔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남은 몇 안 되는 어린이였던 나와 동생은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엄마가 나이가 들어 마을에서 ‘할머니’라 불린다.

젊은 사람이 드문 동네라, 예순이 다 된 엄마도 부녀회 활동을 하신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때면 “국수 삶으러 가야지” 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문득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그릇 얻어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끓인 멸치와 돼지고기 육수에 가느다란 소면을 삶아 낸 그 맛은 집에서 아무리 따라 해도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주말만 되면 그 국수가 떠오른다.

아마 내 인생에서 주말 점심으로 가장 자주 먹은 메뉴가

국수일 것이다.


제주엔 고기국수로 유명한 집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면아라’다.

진하고 고소한 국물 맛도 좋지만, 비빔국수의 새콤달콤한 양념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완벽하다.

고기국수와 비빔국수를 각각 하나씩 주문해 깊은 국물의 감칠맛과 상큼한 양념의 조화를 즐길 때면 질리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가 주말마다 “국수 먹으러 가자”고 하면

남편은 “또 국수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딸과 나는 국수면이라면 환장을 하지만,

남편은 “국수가 질리지도 않냐”고 투덜거린다.


한 번은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는데

식당이 리모델링 중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비까지 쏟아져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급히 들어갔는데,하필 그곳이 국수집이었다.

아직 오픈 전이라 정식 영업은 아니었지만 시식 겸 평가를 부탁하셨다.


“국수는 내가 좀 먹어봤지.” 하는 마음으로

국물 한 모금, 면 한 젓가락을 음미했다.

고기국수는 깔끔했다.

동네 잔치의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국물에 잡내가 없고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도 부드러웠다.


사장님은 우리의 반응을 궁금해하며 계속 표정을 살피셨다. 나는 맛있다고 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국수를 다 먹고 나서 사장님께 말했다.


“국물이 조금 더 깊었으면 좋겠어요.

비빔국수는 아직 개발 중이시라면 ‘면아라’의 비빔국수를 한 번 드셔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그 말에 사장님은 웃으며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국수 값을 받지 않으시니 마음이 불편해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사 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장님은 “다음에 오시면 꼭 서비스 드릴게요”라며 손을 흔드셨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한 번 그곳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수로 맺어진 인연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오래도록 자주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단골 국수집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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