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너는 기적이야

by 기하소

조카와 딸아이는 동갑이다.

7개월 먼저 태어난 조카는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지났을 때, 소아암 진단을 받았다.

그날, 우리 가족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뜻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두려웠다.

일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조카의 상태가 걱정됐지만, 정작 조카가 괜찮은지, 동생 부부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미안했다.


식구들이 미안해하는 마음을 동생은 싫어했다.

자신을 안 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동생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그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연락할 수 없었다.

동생의 마음을 알고 나서, 나와 부모님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조카는 비교적 빨리 수술할 수 있었다.

태어난 지 100일밖에 안 된 아기가 큰 수술을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두가 걱정했다.

담당 의사도 “아기가 너무 어려 걱정이지만, 생각보다 강한 존재이니 잘 버텨낼 거라 믿어보자”고 말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조카는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지낸 뒤 퇴원했다.


퇴원의 기쁨도 잠시, 5년이라는 시간을 지켜봐야 한다는 현실이 남았다.

그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작은 몸으로 큰 수술을 견뎌낸 아이를 ‘기적’이라 불렀다.

신이 있다면, 이 기적 같은 아이를 오래도록 잘 보살펴 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조카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내 딸과 함께 논다.

아팠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건강하게 뛰어다닌다.

가끔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릴 때면, 나는 그저 웃으며 바라본다.

아팠던 기억이 마음 한편에 남아서일까, 조카에게는 왠지 더 관대해진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딸은 “엄마는 00만 좋아해”라며 울었던 적도 있다.

아마 내가 조카에게만 다정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조카 덕분이라고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 일을 겪고 난 후 나는 딸의 건강함에 다시 한 번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조카의 아픔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작고 작은 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조카는 가끔 엉뚱한 말로 우리를 웃게 만드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조카에게서 웃음까지 선물 받는 기분이다.

그 웃음이 들릴 때마다, 마치 병실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멀리 밀려나고 새로운 하루가 열리는 듯했다.

조카의 웃음소리는 우리 가족에게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 줬고, 그 작은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알게 해주었다.


조카의 정기검진이 다가올 때면, 동생의 마음이 예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은 나와 딸이 감기에 걸렸을 때, 가족 모임에 참석해도 괜찮은지 동생이 여러 번 확인했다. 다 나아가는 중이었고 독감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왔지만, 혹시나 걱정될까 싶어 마스크를 쓴 채 조심히 가려고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안해한다면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모두가 조카를 걱정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지만, 마음 한편으론 내 딸의 감기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걱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내심 서운했다.

그 마음이 혹시나 조카에게 좋지 않은 기운으로 닿을까 싶어, 서운함은 금세 접어두었다.


이제 2년만 지나면 조카는 5년이라는 시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하루빨리 그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다만 건강하게 하루를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오늘도 조카에게, 그리고 내 딸에게 전하고 싶다.


“아프지 않고 하루를 잘 보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