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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우 Oct 11. 2022

플로리다 쓰오리다

삼 남매와 / 낭군님과 / 살아남자 / 플로리다

 브런치에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한 지 어언 수년. 샤인 샤인 썬샤인 스테이트 플로리다에서 소소하게 때로는 소란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 50개 주 모조리 횡단을 목표로 여기저기 넓고 얕게 방랑하는 여행기를 써보겠다고 생각한 지 어언 3년이 흘렀다. 거북이가 불러 신나는 곡인양 유명해졌지만 실은 슬픈 노래 '사계'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내 시계도 잘도 도네 돌아가네.


 침대에 눕기 전, ESL 수업 요정 제이미 선생님(그녀가 왜 요정인지는 다음 기회에)과 불가리아에서 오신 투도르카 할머니와 좀 오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함께 읽은 글귀들이 유난히 마음에 남아 잠이 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만난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줌으로 만나 단어 공부도 하고 미국 문화에 대해 토론도 하고 책도 같이 읽는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매튜, 그러니까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이었다. 나는 주로 읽기 담당이라 때가 되면 마이크를 열고 낭독을 했고, 대화는 신앙심이 깊은 두 어르신들이 주로  나누셨다. Blessed are those who are sad. They wi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ose who are hungry and thirsty for what is right. They will be filled.", "You are like salt for everyone on earth. Make your light shine."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과 혜안에 감탄하며 조용히 Mute 상태였던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겁고 간지럽고 활기찬 것이 움직였다. (설마 회충?)


 원두를 무지막지하게 갈아 넣고 핸드드립으로 내린 낭군님표 사약 커피를 실수로 마신 내 잘못도 크다. 사약 커피인 이유는 너무 맛이 없어서 먹으면 피 토하고 죽을 것 같아서... 는 아니고, 너무 쓰고 진해서 나와 낭군님이 붙인 이름. 훗날 그가 사약 커피 전문점을 열게 된다면,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 카페 모카 등의 이름 대신 장희빈 커피. 송시열 커피, 조광조 커피 등이 적힐 것이다.


직원 : 어떤 커피로 드릴까요?

손님 : 조광조 커피요.

직원 : 감사합니다. 참, 두 번째 잔은 무료입니다.

손님 : 왜 때문이죠?

직원 : 조광조가 사약 첫 잔을 먹고 리필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손님 : 아.

직원 : 첫 잔을 다 드신 후에, 저에게 오셔서 귓속말로 "허허, 내가 죽지 않았으니 한 그릇 더 주시구려" 

         속삭여주시면 됩니다.

손님 : 허허.


 ...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아무튼 그리하여 오늘 제이미 선생님과의 수업 빨, 실수로 마신 사약커피 빨에 힘입어 드디어 브런치에 첫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3시.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4시. 똑똑한 브런치 게시판이 공백에 띄워준 격려대로 글 쓰기 딱! 좋은 시간이네.


 그동안 플로리다에서 '사는 게 즐거워 미치겠어'서 글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쓸 것이 태산인데 나는 너무 게으른 것이 문제. 내가 너무 게으르다고 깎아내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이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내려놓고 산 것이 더 문제다. 하지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머지않았고, 뭐든 미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 엉성하고 재미가 없더라도 일단 시작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던 제목을 자판에 두드려봤다. 플로리다, 쓰오리다. 근데 뭘?


 한때 웃기지 않은 글은 쓰지도 읽지도 않겠다고 책임 못 질 거짓부렁을 아무렇게나 씨부렁대기도 했지만, 사람은 헛된 희망을 품었을 때 불행해진다고 내 카톡 이모티콘이 일러주었지. 그래서 차마 웃긴 글만 쓰겠다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은 웃길 것. 가끔 정보도 있을 것. 가끔은 논리도 있었으면... 그래, 헛된 희망을 눈곱만큼만 품고 눈곱만큼만 불행해져 보자.


일단은 자고 보자. 그리고 브런치가 어떤 구조인지도 알아보자. (음? 순서가 바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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