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요즘 자주 듣는 노래가 뭔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음악 취향은 그저 대화의 한 갈래였고, 취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음악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조금씩 조심스러워졌다.
“어떤 음악 좋아해?”라는 질문 앞에서 종종 말을 고르게 된다.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걸 그대로 말해도 되는지 잠깐 계산하게 된다. 너무 마이너하지는 않은지, 너무 오래된 취향은 아닌지, 혹은 괜히 설명이 길어지지는 않을지 같은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다.
음악이 점점 ‘취향’이 아니라 ‘정체성’처럼 소비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가 곧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표식이 되어버린 뒤로, 음악 취향은 가볍게 공유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정보가 되었다.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말하는 일이 나 자신을 설명하는 발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음악을 둘러싼 말들이 너무 많아진 탓도 있다.
이 음악은 어떤 장르인지, 어떤 계보 위에 있는지, 어떤 맥락에서 중요한지까지 함께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따라온다. 단지 “이 노래가 좋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인데, 그 말이 너무 단순해 보일까 봐 덧붙이게 되는 설명들이 음악과 나 사이에 불필요한 장벽을 만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음악을 혼자 듣는 시간이 더 편해졌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듣는 음악은 여전히 처음처럼 솔직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증명할 필요도, 누군가의 공감을 얻을 필요도 없다. 음악은 다시 소리로만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말수가 줄어든 뒤에야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됐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아졌을 때, 비로소 그 감정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음악은 원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닿는 것이었음을 그제야 떠올리게 된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조심하게 된 건, 어쩌면 음악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음악을 곁에 두는 일.
요즘의 나는 그 정도의 거리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