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 날에 대하여

by 율기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하루 종일 아무 노래도 틀지 않는 날들이 있다. 의식적으로 끄는 것이 아니라, 문득 저녁이 되어 돌아보면 단 한 곡도 재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들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 음악은 하루의 배경음이 아니라 구조였다. 출근길의 첫 곡이 그날의 기분을 정했고, 이어폰을 꽂는 순간 외부의 소음은 정리되었다. 음악은 상황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얇은 막 같은 것이었다. 침묵은 어색했고, 무언가 비어 있는 느낌을 남겼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그 막을 일부러 두지 않는다. 지하철의 소음, 카페의 웅성거림, 사무실의 키보드 소리 같은 것들을 그대로 통과시킨다. 그 소리들은 음악처럼 아름답지도, 리듬을 갖추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의 결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 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내가 어떤 감정 위에 서 있는지, 무엇을 피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덮어두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음악이 있을 때는 선율에 기대어 흐릴 수 있었던 감정들이, 소리 없는 상태에서는 또렷해진다.

우리는 종종 음악을 통해 기분을 조절한다. 우울한 날엔 더 우울한 노래로 감정을 정당화하고, 지친 날엔 경쾌한 리듬으로 스스로를 끌어올린다. 음악은 감정을 증폭하거나 완화하는 가장 손쉬운 장치다. 그래서 때로는 음악이 없는 상태가 더 솔직하다.

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 날은, 감정을 미루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지금의 상태를 다른 멜로디로 덮지 않겠다는 태도.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음악 없이도 버틸 수 있는지, 혹은 음악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흥미롭게도,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 날의 첫 곡이 훨씬 또렷하게 들린다.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선율은 더 선명해진다. 음악은 사라졌던 것이 아니라 잠시 물러나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 날은 음악을 포기한 날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필요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모든 소리를 끊어낸 뒤에야 비로소 어떤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는 것처럼, 침묵은 음악의 반대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전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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