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져니박 Jyeoni Park Aug 17. 2023

휴식 없는 휴가

전라북도 부안군

"우리 놀러 가는 거 맞아?"

우리 집 막내가 반신반의 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토요일에 떠나기로 했건만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아직 잘 방도 못 구했기 때문이었다. 휴가철이라 괜찮은 숙소는 이미 다 매진이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꼭 방을 구해줄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는 이모부네 형님말을 믿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출발 이틀 전. 객실이 예약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몇 번을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도저히 예약할 수 없었던 변산 소노벨 객실이었다. 우린 입모아 극성수기를 뚫고 방을 잡아주신 이모부네 형님께 감탄을 보냈다. 끈질김과 약간의 전략이 있다면 세상 일엔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저녁, 논길을 거쳐 비밀 별장에 들어가듯 소노벨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카트에 짐을 싣는데, 각종 옷보따리며 먹거리까지 한 짐 가득하여 마치 피난을 온 사람들 같았다. 은은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쾌적한 로비와 시설들에 눈을 돌리며 1층으로 올라가니 먼저 와 있던 이모네가 우릴 반겼다. 우린 안부를 물으며 우여곡절 끝에 차지하게 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훅 들어왔고 컴컴한 바깥으로는 산책로에 있는 조형물들의 불빛이 어른거렸다. 이모는 답답한 구조라고 했지만 화장실 두 개에 방 두 칸, 주방까지. 이만하면 나에겐 감지덕지였다.


"내일은 늦게까지 자고 천천히 물놀이하러 가자."

"몇 시에 일어날 건데?"

"8시."

엄마의 말에 나는 벌러덩 넘어졌다. 한 주간 새벽예배를 나가느라 잠에 굶주렸던 나는 8시도 가혹하게 들렸다. 그냥 워터파크 가지 말고 잠이나 실컷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긴 했으나, 단체 여행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도 마음 불편한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먹고 느지막이 지하로 내려갔다. 난 막내가 이상하다고 안 입겠다는 래시가드를 대신 입었다. 겨드랑이가 샛노란색이라 도움 청할 일이 있으면 겨드랑이를 들어 보이면 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으나 맘에 안 들긴 나도 마찬가지다. 거기다 꽉 기는 사이즈에 배에 저절로 긴장이 들어갔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막내는 패션에 한참 예민한 사춘기고 비교적 둔감한 내가 입는 수밖에.


하와이 풍 무늬가 들어간 구명조끼를 입고 이곳저곳을 오갔다. 많은 인파 속에서 가족들과 뭉쳤다 멀어졌다를 계속했다. 이상하게도 거기선 서로 떠다니는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음이 나왔다. 에버랜드처럼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지도, 대단한 워터 슬라이드가 있지도 않았다. 그저 넘실거리는 게 다인 파도 풀에 둥둥 떠다니고 유수풀에서 아홉 명이서 한 줄 기차를 만들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지나갔다. 중간중간 피곤이 밀려오면 온천탕에 들어가 피로를 풀다가도 다시 워터 슬라이드를 타러 갔다. 그렇게 우린 살이 쭈글 거리고 소독제 냄새가 몸에 배일 때까지 물안에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로 소파에 앉았다.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으니 여전히 워터 파크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끈질긴 환영을 물리치고 에어컨 바람에 기대어 잠이 들려던 참에 누군가 선크림을 내 얼굴에 척 발랐다.

"해지기 전에 나가야 돼"

엄마와 이모는 지금이 썰물과 일몰 때라며 채석강까지 길을 떠밀었다. 리조트에서 벗어나 조금 걷자 씻은 게 무색하게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자꾸만 뒤처지는 자식들을 부모님들은 재촉했지만 자식들의 걸음은 여전히 신선놀음 같았다.

바닷가에 이르니 붉어지는 태양이 하늘 가운데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우리를 재촉하던 부모님도 채석강 입구에서 커플 사진을 찍느라 갈길을 멈추고 있었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어딜 가는지, 끝은 어딘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화석이 발굴될 것 만 같은 기이한 암석지형을 걸었다. 슬리퍼를 신고 가서 미끄러워질 뻔도 하였고 고인 물에 발을 헛디뎌 소름이 일기도 했다. 책을 쌓아 논듯한 해식절벽을 돌아 돌아 어둑해질 때쯤 끝에 이르니 줄이 잔뜩 서는 모습이 보였다. 유명 포토존이라고 해서 동굴 안에서 걸터앉아 있는 사진을 찍는 모양이었다. 우린 줄 서기를 고사하고 옆 절벽사이 틈에서 비슷한 사진을 남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땀에 찌들어 그리운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엉덩이를 붙일 틈도 없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린 나름 각자의 역할을 척척 해내어 금방 고기를 입에 넣을 수 있었다. 흡족한 식사도 잠시. 너무 갑자기 많이 먹어서 인지 배가 슬슬 아파왔다. 노래방에 가서도 근처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럼에도 잠깐 괜찮은 사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댔다.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은 더 쌓였고 배탈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정말 휴식이 있는 휴가를 떠날 수 없는 걸까. 난 여전히 쉼이 있는 휴가를 떠나길 갈망한다. 그럼에도 정말 작정하고 가서 아무것도 안 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없다고 본다. 집 나가면 X고생이라고, 최고의 휴식은 집에서 쉬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휴가를 떠나는 건, 이번처럼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감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