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여서 좋아해
아이들 동화책을 보다보면 브로콜리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친구 브로리>, <브로콜리지만 사랑받고 싶어>와 같은 식으로. 브로콜리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일까. 브로콜리 예찬은 참 익숙하지만, 실은 나도 예전에는 브로콜리를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몰랐다. 엄마의 브로콜리 레시피는 초장을 곁들인 삶은 브로콜리였으니까. 초장은 맛있지만 브로콜리를 좋아하게 만들기엔 부족했다. 그러다 크림 소스에 젖은 브로콜리를 마주하며 브로콜리에 눈 뜨게 됐다. 사회 초년생 무렵, 친구들과 호기롭게 가던 애슐리에는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와인과 크림 소스에 푹 절은 브로콜리가 있었다. 아마 크림 떡볶이에 들어있던 브로콜리였을 거다. 브로콜리를 쏙쏙 담아내서 와인과 함께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브로콜리 형체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식감과 크림이 잔뜩 묻은 진득한 맛이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었다. 감바스에 들은 브로콜리도,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뿌려 구운 브로콜리도, 그저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집 브로콜리 레시피는 거의 일정하다. 하나는 브로콜리를 가볍게 쪄서 소금과 깨, 참기름과 들기름을 뿌려 먹는 것. 이렇게 간단한 게 맛있을까 싶었지만 처음 그 맛을 본 이후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살아있는 '맛'에 반해 우리집 고정 반찬으로 정착했다. 다른 하나는 찐 브로콜리를 마늘 기름에 볶은 새우와 함께 볶아 소금간을 한 것인데, 마늘과 새우 향이 브로콜리에 고스란히 배어서 풍미가 좋다. 마지막은 찐 브로콜리와 삶은 계란에 마요네즈와 간장, 꿀(혹은 다른 단 것), 깨를 섞은 드레싱을 얹어 섞어 먹는 일종의 브로콜리 샐러드인데, 브로콜리를 좋아하지 않던 그가 앞으로 브로콜리는 이렇게 요리해달라고 했을 정도로 아주 고소하다. 그외의 브로콜리는 조연인 경우가 많다. 크림 리조또나 피자의 보조 재료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줄기 부분. 브로콜리 줄기는 갈아서 냉동실에 두면, 리조또에도, 프렌치토스트에도, 볶음밥에도 넣을 수 있어서 좋다.
브로콜리는 일 년 내내 만나기 쉬운 채소여서, 결혼하고부터는 거의 항상 브로콜리를 사두려고 하는 편이다. 꽃송이가 빼곡한 브로콜리의 특성상 깨끗하게 농약을 세척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되도록 유기농이나 무농약으로 구입하곤 한다. 자주 접했기 때문인지 아이들도 브로콜리는 여차저차 잘 먹는다. 엄청 기다리고 좋아하는 반찬은 아니어도 싫다는 범주에 속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여행을 가면 집에 있을 때보다 채소를 덜 먹게 되곤 하는데, 브로콜리는 휴대하기가 편해 싸가지고 가 부족한 채소를 보충해주기에도 좋다.
브로콜리는 먹기 전 준비 과정이 필요한 편이다. 먼저 꽃부분과 줄기를 손으로 뚝뚝 가볍게 분리한 후 굵은 줄기 껍질은 칼로 벗겨내고 식초를 푼 물에 담가 브로콜리가 떠오르지 않게 접시로 덮어둔다. 10분 정도 후 식촛물을 버리고 꽃송이 사이를 손으로 벌리며 깨끗하게 씻는다. 그리고 5~10분 정도 잠시 방치한 후 찐다. 김이 오른 찜기에 찌면 가장 좋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내열 용기에 넣고 뚜껑을 닫아 1분 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려 찌기도 한다. 갓 쪄져서 나온 브로콜리의 색을 정말 싱그럽다. 모든 채소가 살짝 데치거나 익었을 때의 빛깔이 아주 보드라운 초록이 되는데, 브로콜리는 부피감이 있는 외형때문에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브로콜리를 조리하기 전 방치하는 시간, 그 여유가 꼭 필요하다. 브로콜리가 슈퍼푸드로 불리는 이유는 독보적인 '설포라판'때문인데, 설포라판을 활성화시키는 미로시나아제는 브로콜리에 상처를 내면서 활성화가 되기 때문이다. 브로콜리를 바로 조리해버리면 미로시나아제가 높은 온도에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미로시나아제에게 꼭 시간을 줘야 한다. 만일 깜빡하고 바로 조리했다면 같은 아브라나과인 루콜라나 무와 함께 먹는 걸 권장한다. 잃어버릴 뻔한 설포라판을 그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브로콜리 한 송이에는 꽃눈이 4만 개 이상 들어있다고 한다. 비타민 C, 비타민B1, 비타민B2, 엽산의 함유량이 채소중 최고로 꼽히는 건 그때문이 아닐까. 어느 기념일에는 화려한 꽃 대신 브로콜리 한 송이를 받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