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하면 딱 좋은
얼마 전 문득, 엄마가 주신 마늘장아찌가 익었는지 궁금해 통마늘 한알을 와작 깨물어 먹었다 속이 쓰려 된통 혼났다. 그건 정말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간마늘이나 편마늘은 애송이. 생짜 그대로의 마늘 한 알은 식도를 태워버리는 듯한 고통을 안겼다. 숨이 막힐 것 같이 아팠는데, 그후에도 여전히 마늘이 좋았다. 마늘의 맛을 알기 때문이다.
푹 익힌 마늘은 정말 맛있다. 국에 넣었을 때 절묘하게 잡아주는 맛이 좋고, 올리브 오일을 잔뜩 머금은채 지글지글 끓고 나면 쏙쏙 찾아먹을 만큼 근사하다. 조개든, 고기든 거슬릴 수 있는 어떤 냄새든 균형 있게 덮어주는 것도 고맙다. 익히지 않더라도 마늘이 시간과 합심해 만든 마늘장아찌나 장아찌 간장도 별미다. 어렸을 때 마늘장아찌 간장과 계란을 밥에 넣어 비비면 일반 간장을 사용할 때보다 몇 배는 맛있었다. 그건 다 마늘의 힘이다. 고깃집을 가면 꼭 마늘을 넣어 구을 수 있는 기름 그릇을 요청한다. 고기판 한구석에 넣어 조용히 익히면 고기만큼의 제 역할을 해낸다. 잘 구운 고기(특히 기름진 부분)를 간장과 식초, 간마늘을 넣은 소스에 찍으면 고기의 숨은 맛을 건드려 절묘한 감칠맛이 난다.
가끔은 익히더라도 아린 맛이 남아있어 맵다고 먹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마늘과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고사리를 볶거나 새우와 브로콜리를 함께 볶거나 시금치와 크래미 볶음을 할 때 다진 마늘을 첨가하고, 오징어를 올리브유에 볶을 때면 편 썰은 마늘을 듬뿍 넣는다. 마늘은 예로부터 기운이 없을 때 강장제나 몸 안의 균을 없애주는 약으로 쓰였고, 성질이 따뜻해 체온을 올려준다고도 했다. 하여 면역이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찬바람이 불거나 감기가 돌 때 더욱 마늘이나 파를 넣은 요리를 챙기려고 한다. 마늘은 익혀도 영양 파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첨가하기가 좋다. 닭다리를 오븐에 굽기 전에 마늘 가루를 고루 바르면 풍미도 훨씬 좋아진다.
마늘에는 알린이 주요 성분으로 들어 있는데, 알린은 마늘 조직에 상처가 나는 순간 자기 방어 물질인 알리신으로 변하며 우리가 아는 특유의 독한 향을 풍긴다. 이 알리신이 강력한 살균 작용을 하며, 알리신에서 생성되는 2차 물질이 우리 몸 조직을 상하게 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한다. 하지만 강한 음식은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게다가 마늘은 피를 묽게 하기 때문에 혈행을 개선시키는 데는 좋지만 수술 등을 앞 둔 경우에 마늘즙 등을 계속 복용한다면 혈액 응고가 잘 되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요리에는 마늘이 참 많이 쓰인다. 나물을 무칠 때도, 김치에도, 국을 끓일 때도 마늘이 들어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마늘의 알리신은 먹은 사람의 입에서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서 냄새를 내뿜게 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냄새는 마늘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다. 어떤 냄새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몸에서 나는 마늘 냄새. 우리나라 시초인 단군 신화의 웅녀가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이니 한국 사람이 마늘과 가까운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일 수도 있겠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는 마늘을 우리나라보다는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마늘보다 생강을 좀 더 빈번하게 사용하는 느낌. 마늘도 생강도 향신료의 일종이고 강한 향과 맛을 가졌지만 결이 확연히 다르다. 생강은 매끈매끈하다면 마늘은 올록볼록하달까. 먹고 나서 입에서 남는 맛이나 향의 강도도 마늘은 굵직하고 생강은 얇다랗다. 나라마다 요리의 정체성은 어쩌면 그런 향신료에서부터 출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난 한국인이니까, 오늘도 뒤적뒤적 마늘을 꺼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