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할 수 없는 현실을 사는 방법
매트릭스를 이야기 했습니다.
“진짜 현실 같은 꿈을 꿔 본 적 있나? 네오? 그런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그 대답은 현실이 아닌 세계를 경험해 보아야만, 또는 현실과 꿈(가상세계)를 동시에 놓고 보아야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가상을 구분하는 최소의 전제이니까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면요. 아침부터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먹고 싶은 시나몬롤을 참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다음 주의 스케줄을 짤 필요가. 하루를 살아내느라 애쓰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그냥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파란 알약을 먹고 진짜 현실로 도피하고 싶습니다. 혹은 그 반대로요.
꿈을 꿈으로 생각한다면 또는 현실을 현실이 아니라 여긴다면 ,열심,으로 살아가야 할 동기가 희미해집니다.
하지만 내가 놓인 배경이 현실이든 현실같은 꿈이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을 채운 흔적, 바로 ‘사실’입니다.
현실과 꿈을 확신할 수 없더라도 나는 사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먹지 않은 시나몬롤로, 흘린 땀으로, 수업자료와 스케줄표의 약속들로.
시간 안에 채워진 나의 흔적들은 사실로서 실재를 증명합니다.
사실은 지나간 후에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믿지 않더라도 사실로서 알 수 있습니다. 존재와 존재의 증명을.
의미가 없을까요, 현실이 아니라면 혹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라면 확실한 사실에서, 시간에서 쌓은 이야기와 감정에서의미를 찾을 거예요.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 무게로.
밖은 벌써 어둡고 가로등은 꺼졌습니다. 나는 80*200 좁은 매트리스 위에 눕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눈을 감으면 나는 다른 세계로 갑니다. 그곳은 현실이 아니어서 무서운 괴물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무섭습니다. 그래서 자다 말고 램프의 불을 켭니다. 그리고 나는 휴대폰을 켜고 내 마음에 위안을 줄 이를 찾습니다. 그 행위로, 동작으로 나는 편안해집니다.
이것는 나의 사실입니다.
현실이건 현실이 아니건.
당신이 믿건 믿지않건.
이것은 나의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