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OK
괜찮아.
그녀가 나에게 속삭였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다고, 누구나 방황할 수 있다고.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내가 가야하는 도로를 밝히는 가로등, 나의 앞을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등불이 없어져도, 그것이 처참하게 부서져 내동댕이쳐져도 괜찮다고.
“너가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방황하기에, 괜찮아──.”
이 말은 어쩌면 나에게 향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숨을 내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줬다. 하얀 벽, 하얀 메트리스, 하얀 침대 테두리, 테이블. 모든 것이 백색으로 하얗지만 어느것도 밝게 빛나고 있지 않았다. 백색의 공간은 생명을 살리려는듯 스스로를 빛내려하지만, 주변을 덮은 죽음의 기운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어둠 속으로 잠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타오르는, 작은 불꽃이 나에게 속삭인다. 사랑한다고,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며 눈을 감을 수 있어서, 최후의 순간까지 사랑받을 수 있어서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삶이었다고. 꺼져가는 목소리로…….
나의 길잡이, 나의 길 전체를 활활 태우며 나를 인도해주던 그 불꽃은 어느새 작은 등불 속에서 힘겹게, 마지막 연소를 진행중이었다.
그녀를 껴안고, 그녀의 볼과 나의 볼이 맞닿은 그 순간에, 그녀의 마지막 숨소리는,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아, 어째서 괜찮다고 하는 것일까. 나는 괜찮지 않은데. 어째서 마지막 말이 나를 위한 위로인 것일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녀일지언정.
모든 빛이 사그라들고 밤이 찾아왔다. 달은 뜨지 않았고, 해는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태양의 신, 라는 나의 세계를 저버렸고, 신앙심이 없는 나는 나의 세계를 앗아간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녀의 손을 잡고 속으로 외친다. 어째서 그녀를 버렸냐고, 어찌하여 나의 세계를 무너뜨린 것이냐고. 내적인 부르짖음 어느새 육성으로 표현되어지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어째서 그녀를 앗아갔냐고.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거정해주던 그녀를 왜, 대체 왜 데리고 갔는지 물어보고 소리쳤다.
시야 저편에서 열린 병실 문이 보였다. 간호사 몇 명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아니 어느 누가 와서 나에게 위로한들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의 빛이 나에게 위로를 하고 갔으나, 나의 이 마음은 찢어지게 아픈데, 어떠한 존재의 위로가 도움이 되겠는가. 삶의 불꽃이, 나의 세계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위로인데, 어째서 나는 부서지고 있느냐고.
손이 풀렸다.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모았던 손은 흘러내려 바닥에 닿았다. 하얗지만 어둠이 드리운 바닥은 쓰라릴 정도로 시렸다. 이내 주먹을 지고는 바닥을 내리친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 뜨거운 고통이 온몸을 휘감는다. 순간의 그 뜨거움에 전율하며 다시 바닥을 내리친다. 고통은 열기로 치환되고 빛을 잃어, 불을 잃어 차갑게 굳어가던 나의 몸을 데운다. 바닥을 연신 두들긴다. 세계의 모든 고통을 내가 흡수할테니 나에게 열기를 다오. 빛이 없는 이 세계에 유일한 따뜻함을 나에게 선사해다오. 바닥을 두드리는 것은 이내 나의 머리가 되고 시야에 붉은 것들이 생겨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득히 먼 곳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으나 나는 다시 한 번 바닥을 머리로 가져간다.
쾅.
시야가 붉게 점멸한다. 누군가 나의 머리를 잡는다. 팔이 잡히고 온 몸이 들린다. 따뜻한 무언가가 머리로부터 흘러내려 나를 적신다.
아, 이젠 멈춰도 되겠다. 충분히 따뜻한 것 같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던, 나의 세계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따뜻해서일까? 그래서 돌아온 것일까?
-“돌아가!”
아아, 그것은 명백한 거절이다. 이런. 신에게 거부당한 것도 모자라 이젠 그녀에게마저 거부당하다니.
그래도 나는 그녀의 말을 들어야한다. 그녀는 나의 세계이니 곧 나이다. 그녀가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래, 괜찮을 것이다.
온 몸에 서서히 힘이 풀렸다.
괜찮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