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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Apr 02. 2024

그건 당신 책임이지!

부모와 자녀 관계의 위험요인, '부부갈등'

'딩동'

아내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하자, 중고거래 사이트로 연결됐다. 


여아 자전거 판매합니다. 

사용기간 1개월

구입가격 OO원

판매가격 OO원

급하게 판매하는 거라 가격조정 가능합니다.    


판매글을 본 남편이 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남편: 뭐 하는 거야?

아내: 뭐가?

남편: 온아 자전거 뭐냐고.

아내: 당신이 팔라며!

남편: 내가 언제?

아내: 어제 그랬잖아!     


일방적으로 통화가 종료된 후, 남편은 빠르게 기억을 되감아 본다.      


아내: 그럼, 팔면 되겠네. 

남편: 뭐?

아내: 자전거를 사줘서 애가 다친 거니, 팔아서 없애면 되잖아. 

남편: 매번 그런 식이지. 하여튼 말이 안 통해. 

아내: 그래. 나는 애도 다치게 하고 말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니까.      

남편: 팔아! 팔아버려!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이었다. 

7살이 된 온아는 자전거를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고, 생일날 찾아온 공주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자전거는 온아의 보물 1호가 됐다.      


엄마: 아, 맞다. 온아야. 무릎 보호대 안 가져왔네. 오늘은 타면 안 되겠다. 

온아: 싫어, 탈 거야! 조심히 타면 돼.     


마침 온아의 유치원 친구 주리 엄마가 온아 엄마를 부른다. 

잠시 아이들의 유치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온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에게 달려가 보니, 자전거에서 넘어진 아이의 무릎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 혼자 타는 건 안 된다고 했잖아. 무릎 보호대도 안 하고 타겠다고 고집부리고. 다 네 책임이야!     


저녁에 상황을 들은 남편은 온아의 무릎을 보자 성질이 났다.      


남편: 이제 막 배운 애를 혼자 타게 하면 어떻게 해. 그리고 무릎 보호대는 왜 안 해줬어. 내가 자전거 탈 때 꼭 챙기라고 했는데. 애 무릎이 저게 뭐야. 당신이 애를 잘 봤어야지.      

아내: 그래 다 내 책임이지 뭐.      

남편: 말만 그렇게 하면 다야? 애가 다쳤는데 이제 와서 뭘 책임진다는 거야.

아내: 그럼, 팔면 되겠네. 

남편: 뭐?

아내: 자전거를 사줘서 애가 다친 거니, 팔아서 없애면 되잖아.      


그렇게 온아의 자전거는 구입한 지 1개월 만에 중고시장에 등장했다. 

아이는 자신의 보물 1호가 다른 아이에게 팔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릎에 붕대를 감은 채 태연하게 태블릿을 보고 있다.      


중고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온 아이의 자전거를 보니 속이 쓰렸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아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까. 



부부 사이에 책임을 따지는 일은 비일비재하죠.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원인과 결과를 놓고 책임 소재를 가리기 바쁩니다. 


'너는 이만큼 잘못했고 나는 이만큼 잘했고' 바로 이런 식이죠.     

      

위와 같은 사례에서, 부부는 무엇에 관해 대화를 나눠야 할까요?     


아이가 부모 도움 없이 혼자 자전거를 타는 일을 해내고 싶었던 마음

혼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났을 때 놀라고 무서웠던 아이의 심정

다음부턴 무릎 보호대를 챙겨줘야겠다는 아내의 다짐

아이가 다쳐서 속상한 부부의 기분

이 정도 다쳐서 다행이라고 아내를 위로하는 남편의 배려 등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데, 누가 잘못해서 아이가 다친 건지를 밝히는 청문회 같은 다툼이 벌어지고 있으니, 부부사이의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요.      


제가 예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에 벌어지는 ‘심리게임’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https://brunch.co.kr/@459430a354354ac/63


이러한 심리게임은 부부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지금, 이 부부는 ‘당신만 아니었으면’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죠.      


이 게임에서 남편은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으로 아내의 행동을 통제하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사례에서 남편은 아이를 잘 보호하지 않고 무릎 보호대도 챙기지 못한 아내에게 ‘내 말을 안 들으니 이런 일이 생기지.’라며 아이가 다친 것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고 가정에서 자신의 권위를 강하게 만들려 하고 있죠. 


반대로 아내는 위축된 모습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당신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초라해지진 않을 텐데.’라며 강압적인 남편의 태도를 부부갈등의 원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결혼 전에 남편이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사람이란 걸 몰랐을까요?

만약 알았다면 왜 알고서도 결혼을 했을까요?     


어쩌면 아내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두려워하는 유형의 사람이었을 겁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이 자신의 손을 거쳐야 안심하는 지배적인 유형의 상대를 의도적으로 선택합니다. 


왜냐면 남편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았을 거라고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요.      


“당신 같은 사람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도 이렇게 되지 않았어!”     


그런데 그런 사람을 고른 건 바로 나입니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물론 상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무조건 따르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성격을 전혀 몰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과 아내는 ‘당신은 내 말을 들어야 해.’, ‘당신만 아니면 내 삶은 괜찮아.’라는 게임을 하며 불행을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중요한 건, '부부 갈등'은 부부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6개월 된 신생아에게 인형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기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기는 인형만 싸워도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립니다. 

단지 인형이 다투는 것인데도, 아기는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리며 불편함을 드러냅니다. 


6개월 된 아이도 부모의 갈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아이가 부모가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부모라는 환경이 자신의 생존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부모 안에서 몸도 마음도 키워나가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일상이 편안하고 예측가능해야 하는데. 부모가 자주 다투면서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하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향한 부모의 애정과 관심이 적어질까 불안해하는 거죠. 

 

다시 사례로 돌아가 볼게요. 


이 부부는 왜 이해와 공감보다는 비난과 원망이라는 소통방법을 선택하고 있을까요.     


사람들은 ‘선택적 주의’와 ‘오지각’으로 인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편향되어 있는데요.      


다시 말해, '선택적 주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부합하는 정보만 찾아서 수집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뇌는 불일치를 싫어하니까요. 


‘나는 정확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고 그러니 내 생각은 항상 맞아.’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잘한 일만 기억하고 실수나 잘못한 일은 삭제해 버립니다. 내가 가진 기존의 신념과는 일치하지 않으니까요. 심지어 실수를 저질러도 '결론적으로 잘된 일이야.'라며 '잘못된 지각'을 하죠.  

  

이러한 편향적 사고는 부부 사이에서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즉, '모든 건 당신 책임이야.'라는 태도를 갖게 합니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배우자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 비해 더 우울감을 느끼면서 자책하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사례에서 아내의 경우가 그렇죠. 


이런 사람들은 ‘나는 꼼꼼하지 못해서 무릎 보호대는 챙기지 못했지만, 아이가 다쳤을 때 재빨리 응급처치를 하는 상황대처능력은 좋아.’라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남편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다 내 책임이지.’라는 자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가 다쳤을 때 “네 책임이야.”라고 말한 부분, 기억나세요?


남편에게 자주 지적과 비난을 당한 아내는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자아 지지(ego support)'의 힘이 적어집니다. 그러면 아이가 실수나 잘못을 해도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하지 못하죠.  그러니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를 탓하는 겁니다. 


이렇게 부부 사이의 역학은 아이와의 관계로 옮겨갑니다. 


그러면 이 가족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사이가 나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하죠. 


아이가 다친 마당에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를 따지는 일이 뭐가 중요할까요?

부부 사이에 책임을 따지는 일이 뭣이 중헌디?!

설사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몸을 다친 아이와 마음을 다친 아내를 위해, 

“아이가 다쳐서 놀랐겠네. 이 정도면 다행이니 자책하지 마.”라고 공감하고 위로한다고 남편으로서의 권위나 자존감이 낮아지나요?


아이를 다쳐 불쾌한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내가 더 잘 챙길게. 걱정시켜서 미안해.”라고 남편의 심정을 헤아려주면 안 될까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그것은 절대 꺼내지 않고 상대의 탓을 하거나 나의 어려움만 봐달라는 이기적인 요구만 하고 있으니, 둘 사이의 벽이 사라지지 않는 거겠죠. 

그리고 그 벽으로 인해 생긴 그늘에서 아이는 자랍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보드라운 말은 부드러운 말을 부르고 거친 말은 까칠한 말'을 부릅니다. 


그동안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며 무시하고 탓하기만 하는 태도를 장착하고 부부간에 대화를 해왔다면, 오늘은 상대를 공격하는 그 무기를 내려놓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인정하고 용서하는 선물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의 앞에서 부모가 싸움 대신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으면,
아이는 인상을 쓰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관계를 맺는 기술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

https://blog.naver.com/leettobagi/22314718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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