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이해하는 일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왜 중요할까?
“현우 엄마, 이혼해?”
“무슨 말이에요?”
순간적으로 몸서리가 쳐졌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도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현우가 세진이한테 자기 부모 이혼한다고 그랬대.”
“...... 아니에요. 이혼은 무슨......”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안과 슬픔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렇지? 부부 사이좋은 거 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 이혼이라니 말도 안 되지.”
“현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엄마, 아빠 말다툼 하는 걸 봤나? 우린 싸우는 게 일상인데 워낙 금슬이 좋아서 애가 보고 놀랐나 보네.”
바늘을 삼킨 것처럼 명치끝이 아려왔다.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내뱉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언어폭력은 아이가 없을 때에만 자행됐다.
무시와 조롱, 비난과 욕설까지.
오랫동안 진짜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남편이 얼마 전 아이 앞에서 가면을 벗었다.
아이를 방에 들여보내는 손은 지진이 난 듯 떨렸다.
고장 난 기계처럼 서서 남편이 쏟아내는 오물을 받아냈다. 사람들은 모른다.
번듯한 직장에 친절한 미소, 기념일마다 명품 선물을 하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제발 그만 좀 해. 이혼해 줘!”
멈추지 않는 남편의 욕을 가로막으며 피 같은 언어를 뱉어냈다.
아이는 피범벅이 된 나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 죄책감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아이를 위해 참는다는 변명의 유효기간은 이미 오래전에 만료됐다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저는 가면을 벗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성 들여 만든 ‘나’를 내려놓고 솔직한 모습으로 돌아오죠.
무채색 위주의 정장에서 핑크 돼지가 그려진 잠옷을 입고, 입안이 보일까 오물오물 조심히 음식을 씹던 나에서 입이 터지게 쌈을 싸서 밀어 넣으며 ‘밥은 이렇게 먹어야지.’라고 옷에 그려진 핑크 돼지처럼 웃는 나로 변신하죠.
만약 우리에게 이처럼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개인적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사회생활을 위한 심리적 에너지를 충전할 수 없을 겁니다.
다시 아침이 밝았네요.
무채색 정장을 입고 품위를 아는 입을 준비한 채 거울 앞에 섭니다. 이제 가면만 쓰면 외출 준비 끝이죠.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가면, 즉 '페르소나'를 갖고 있습니다.
페르소나(Persona)는 연극에서 배우가 맡은 역할을 위해 쓰는 탈로, 인물이라는 ‘퍼슨(person)’과 ‘퍼스낼러티(personality)’도 페르소나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닌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가면(페르소나)’를 쓰죠.
이 장면은 정말 유명한데, 장화 신은 고양이가 동정심을 얻기 위해 지은 표정인데요.
원래는 이런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귀엽고 연약한 존재로 보이고 싶어 가면을 쓴 거죠.
융은 페르소나란 개인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인격의 단면으로, 진짜 자기 모습을 숨겨주는 ‘보호벽’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융의 말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기에 '가면(페르소나)'을 쓰는 거죠.
저도 누가 핑크 돼지 잠옷을 입고 쌈장을 옷에 묻히며 밥을 먹는 걸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눈앞에 아찔해지니까요.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보여주고 싶은 나인 사회적 인격을 형성합니다.
집에 서는 어리광을 부리는 천덕꾸러기인데 학교에만 가면 친구들에게 양보를 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경우가 그렇죠.
아이도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가면'이 진짜 나와 분리되지 않기도 합니다.
처음의 사례에서 현우 아빠처럼 사회적인 나와 진짜 자기 사이에 간격이 너무 크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하죠. 특히,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혹시 회사에서, 와인동호회에서, 학부모 모임에서, 봉사활동에서, 쓰는 가면이 모두 다른가요?
어떻게 상황마다 다른 가면을 쓸 수 있냐고요?
사회적 인격인 페르소나(가면)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니거든요.
박순환(2005)은 한국 사람이 자주 쓰는 9가지의 가면(페르소나)에 대해 연구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호통제 페르소나, 체면지향 페르소나, 민감한 어린이 페르소나, 배려지향 페르소나, 유희적 어린이 페르소나, 강함추구 페르소나, 완벽지향 페르소나, 비판적 페르소나, 성취지향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각각의 특징을 설명드릴 테니, 나는 어떤 가면을 주로 사용하는지 또 나의 아이는 어떤 가면을 주로 쓰는지 알아보세요.
이 가면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삶의 초기에 형성되는 가면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나를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쓰는 가면이죠.
‘보호통제 가면’을 쓰는 사람들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말이나 행동은 잘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받아도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바로 표현하지 않죠. 대체적으로 일과 가정, 인간관계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가면은 체면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쓰는 것으로, '체면지향 가면'을 쓰는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도 품위 있게 행동하면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는 일에 매우 신경을 씁니다.
이런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재밌는 상황에서도 크게 웃지 않죠.
사람을 만날 때 체면이나 위신이 떨어질까 봐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니,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죠.
이 가면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데요.
다양한 자극을 느끼고 반응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쓰는 가면입니다.
‘민감한 어린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 상처를 잘 받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자주 봅니다. 상대의 감정에 쉽게 동요되어 누가 울면 따라 울고, 누가 웃으면 따라 웃죠.
그러다 보니 쉽게 마음이 상하고 그럴 때면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말 그대로 민감한 아이처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면서 누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하죠.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가면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으면 불안해하고 작은 일도 누군가와 상의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이 가면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만족을 중시하고 남을 배려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배려지향 가면’을 쓰는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고 남을 위해 헌신합니다.
절대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욕구는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만족만 신경 쓰다 보니, 내가 가기 싫어도 상대가 가자고 하면 같이 가고, 먹기 싫어도 상대가 좋아하면 참고 먹는 거죠.
이 가면을 자주 쓰는 사람은 오랫동안 자기의 욕구를 억압했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어떤 가면을 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부모와 자녀 관계의 양상도 달라집니다.
특정한 가면만 자주 쓰다 보면, 부모와 아이 모두 진짜 자기의 모습을 잃게 되니까요.
나와 아이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까요?
나머지 5가지 가면 유형에 대해선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 설명드릴게요.
참고문헌
Jung, C. G. (2004). 인격과 전이(한국융연구원 C. 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역). 서울: 솔출판사.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showtimes_jf/150128960465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971919&memberNo=3506482&vType=VERT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