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갈등으로 인해 고민하는 부모에게 영화 ‘결혼이야기’가 답하다.
한 부부가 이혼을 하려고 합니다. 이혼을 위한 필수 절차인 부부 상담을 받고 있네요.
이들의 이름은 찰리와 니콜입니다. 결혼 10년 차죠. 헨리라는 아들도 있습니다.
상담사는 두 사람에게 서로의 장점을 써오라는 과제를 주었는데요.
과연 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빈 종이에 어떤 내용을 채워왔을까요?
찰리는 말합니다.
니콜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까다로운 가족 문제도 잘 해결하죠.
집안일은 못해도 가족들을 사랑하고, 뭘 모르거나 보지 못한 책이나 작품이 있어도 솔직히 말하는 성격입니다. 힘든 내색 없이 아이와 잘 놀아주고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죠.
니콜이 말합니다.
찰리는 남들이 뭐 하고 하든 자기 뜻을 꺾지 않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하고요.
검소하고 감성적이며 아이의 떼도 잘 받아주죠. 곧잘 자기 세상에 잘 빠지고 경쟁심이 강하지만, 술고래이면서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 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모르는 인턴조차 무시하지 않아요.
찰리는 이혼을 하더라도 아들을 위해 뉴욕에 살자고 말합니다.
니콜은 찰리를 만나 뉴욕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LA를 떠난 적이 없어 고향인 LA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도요.
헨리는 엄마를 따라 LA로 갑니다. 아이는 아빠도 엄마도 모두 사랑하죠. 그래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무리 부부갈등이 심각해도 아이가 있으면 이혼이 망설여지기 마련입니다.
인내에 한계를 느끼고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조차 쉴 수 없는데, 아이를 생각해서 이혼만은 참아야 하는 걸까요?
니콜은 시간을 끌면 마음이 흔들리까 봐 서둘러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납니다.
변호사에게 결혼생활을 털어놓다 보니 이혼에 대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네요.
“집에 있는 작은 물건부터 큰 가구까지 모두 찰리의 취향이었죠. 내 취향이 뭔지 잊어버릴 정도였어요.”
니콜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지만, 찰리는 나중에 가자며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성공한 연극 연출가였고 뉴욕에 그가 설립한 극단이 있었으니까요.
니콜은 남편이 자신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믿었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것만 같았거든요.
“찰리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봤어요. 근데 모르더군요. 그래서 떠났죠.”
심리학자인 와이즈먼은 안타깝게도 결혼한 후 1년이 지나면 열정적인 감정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에서 연인 사이에 느끼는 지루함이야말로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설명하죠.
시간이 흐르면서 부부 사이에 열정과 설렘은 편안함과 소속감으로 대체됩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 편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있죠.
물론 아이가 있는 경우엔 더 그렇고요.
문제는 이 편안함과 소속감이 도전을 받는 경우인데요.
아내나 남편과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하고 우리라는 소속감이 들지 않으면서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옆에 있는 사람으로 인해 걱정과 스트레스가 쌓여간다는 사고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편안함과 소속감의 자리에 불안과 우울이 들어앉습니다.
언제 또 다툴지 몰라 예민해지는 상태가 지속되죠.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이도 고스란히 두려움과 슬픔, 우울감을 느끼며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니콜과 찰리도 아이 앞에서 반복되는 싸움을 멈추고 삶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이혼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거죠.
니콜이 이혼소송 서류를 건네자 찰리도 변호사를 만납니다.
그들의 10년 간의 결혼생활은 양쪽 변호사들로 인해 난도질을 당합니다.
상대 변호사는 찰리와 니콜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따지고 서로의 흠집을 들춰내죠.
찰리는 외도를 저지르고 연극에 빠져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고, 니콜은 남편의 명예에 기대 살면서 매일 술을 마셨다고 폭로합니다.
엄청난 변호사 비용을 내고도 상처만 커지는 재판을 뒤로하고, 그들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합니다.
니콜은 남편에게 자신이 왜 LA에서 살고 싶었는지 아냐고 묻습니다.
찰리는 모른다고 대답하죠.
그녀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자신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고 느꼈다며 고백합니다.
찰리는 오히려 아내가 집안일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삶에 만족하지 않고 불평만 늘어놓는다며 비난하죠.
니콜은 남편이 자신을 이용하고 조종했다며 쏘아붙이고,
찰리는 아내가 자신이 못났다고 느끼게 해서 같이 사는 것 자체가 재미없었다고 화를 냅니다.
찰리는 아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악담까지 퍼붓습니다.
니콜은 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조차 알아주지 않는 찰리를 만났을까요?
결혼생활 동안 찰리의 감정을 살피고 그를 위해 자신의 소망조차 버려버린 니콜은 건강한 관계 필요한 ‘적절한 한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네요.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적절한 한계’를 배우지 못한 아이는 ‘만족’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갖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놀고 싶다고 밖에 나가자는 아이의 요구가 귀찮아 초콜릿이나 과자를 주며 집에 있게 한다거나,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으로 벌을 줬다면, 아이는 허기나 포만감과 같이 신체의 신호를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하죠.
즉, 배가 고프다는 허기가 느껴져서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부모가 무언가를 원할 때 음식을 주었기 때문에, 아이는 배고픔이 어떤 느낌인지 모릅니다.
반대로 배가 고파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못하니, 포만감이 무언지도 모르죠.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심리적 허기가 질 때마다 무언가를 먹고,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음식을 찾게 되거든요. 이들은 어떻게 해야 ‘내면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어느 정도가 만족스러운 건지 자신만의 기준이 없으니, 인간관계에서도 ‘적절한 한계’를 긋지 못한다는 겁니다.
니콜의 엄마는 딸을 과잉보호하고 늘 넘치게 무언가를 주면서 키웠죠. 남편이 죽은 후 자녀만이 삶의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그런 엄마에게서 자라다 보니 니콜도 찰리에게 ‘적절한 한계’를 정하지 못한 채, 남편이 원하는 대로만 살려고 애썼던 겁니다.
내가 지금 결혼생활에서 어떤 부분에는 허기를 느끼고, 어떤 부분에는 포만감을 느끼는지 모르는 채로 말이죠.
니콜처럼 남편의 입장만 헤아리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남편의 것으로 대체해 버리면, 결국 남는 건 공허함과 우울 뿐이죠.
니콜은 찰리가 자신에게 삶의 만족감을 선물처럼 안겨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가치 있다는 만족감은 남편도 아이도 아닌 나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경험하는 감정인 거죠.
소리를 치며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는 니콜과 찰리는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타까움에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릴 뿐이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요.
찰리는 당분간 LA에서 지내면서 연극 연출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들과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요.
그리고 아들이 발견한 종이 한 장을 보게 됩니다.
니콜이 써놓은 자신에 대한 장점들이네요.
아이의 떼를 잘 받아주고 인턴 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긴다.
......
나는 그를 본 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다.
난 평생 그를 사랑할 거다. 이제 말이 안 되겠지만.
그렇게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랑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헨리를 안고 있는 찰리의 풀어진 운동화끈을 다시 묶어주는 니콜을 보며 찰리는 비록 그들의 결혼 이야기는 멈추었지만, 니콜과 자신의 관계가 끝난 건 아니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아이가 있는 부부라면 웬만하면 갈등을 피하려 하죠.
상대가 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에 서로에게 원하는 것만 말하게 됩니다.
‘당신이 이랬으면 좋겠어.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해.’
하지만 다수의 심리학자와 철학자들은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번스는 나를 무시하고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자기 자신'뿐이라고 강조하는데요.
남편이 “당신은 할 줄 아는 게 뭐야?”라고 비난했을 때, “내가 특별히 잘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나 아이들 준비물 챙기는 건 열심히 하려고 하지.”라고 받아들이면, 남편이 계속해서 싸움을 걸 수가 없겠죠?
무슨 말이냐면 상대의 비판에 비아냥거리거나 따지지 않고, 우선 인정한 후, 침착하게 진실만을 말하는 겁니다. 상대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만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상대는 분노를 일으키는 동력을 잃게 됩니다.
한 마디로 같이 달려들어 싸워야 마음껏 화를 낼 수 있는데, 상대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진솔하게 대응하니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만약 남편의 말에 “그래. 내가 뭘 잘하겠어. 잘하는 게 없으니 당신 같은 남자랑 결혼했겠지. ”라고 받아친다면, 갈등은 점점 극으로 치닫겠죠.
그리고 나의 내면에선 ‘어떻게 저런 남자를 만나 매일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내 삶은 정말 불행해.’라며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게 됩니다.
결국 번스의 말대로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내가 되는 거죠.
예를 든 상황에서 남편의 태도나 말이 옳다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말을 바로 잡느라 언성을 높이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결국 상대와 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쌓여 갈등에 불만 붙이게 되니, 먼저 인정할 부분은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감정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대화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들이밀면서 상대가 틀렸다는 걸 입증하라는 건 아닙니다.
상대의 말이 틀렸더라도 흥분한 상태라면 우선 진정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 맞아. 나한테 그런 부분이 있지.”라는 반응만 보여도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을 테니까요.
아이가 있는 경우, 부부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묵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부부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혼하자는 약속을 하기도 하죠.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상처와 충격을 안겨주는 건 당연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감당하기 어렵죠.
그렇지만 매일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하는 부모의 모습을 목격하는 일도 아이의 마음에 동일한 상흔을 남깁니다.
부모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더라도 아이를 사랑하고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려 노력한다면, 아이는 언젠가는 부모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기 전에, 내가 가진 카드가 정말 그것밖에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니콜과 찰리도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어찌 보면 잘 어우러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합니다.
갈등과 싸움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를 생각해서 이혼만은 참아야겠죠?
이혼만이 답은 아니지만, 이혼은 여러 개의 답 중 하나입니다.
부부 사이에 아직 사랑의 흔적이 있다면 따라가 보세요.
나는 남편을 또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결혼을 약속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결혼은 아이 때문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만나 약속한 삶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