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버릇까지는 아니다. 요즘에는 혼자 있건 여럿과 있건, 술을 마시면 빈 자리에 잔을 두고 잔을 채운다. 그리고 육성으로 “음복해야지”라고 말한 뒤 잔을 들고, 다시 한 번 “흠향하소서”라고 말하고 예의바르게 일어나 잔을 들어 올려 마신다. 그 잔의 주인은, 내가 생각했을 때는 죽은 ‘나’일 것이다. 나는 확실하게 죽었다.
그래서 연락이 되지 않고, 연결이 끊어졌으며, 무엇보다 돌아오지 않는다. 흠향하소서. 오늘은 회식이다. 죽은 돼지와 죽은 소와 죽은 양들을 불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살하며 번제하고, 또 “음복해야지”라고 말하고 “흠향하소서”라고 말해야지.
마지막으로 추천해 준 종목을 가볍게 무시한 A에게, 인생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종목 하나가 유일한 기회일 수는 없다. 배팅 존에 공을 던질 투수들은 넘치고 넘친다. 너는 나를 잃은 것이, 오히려 너도 모르는 인생 기회의 상실일 거다. 이렇게 혼자 오만하게 생각하고 남몰래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나중에, 틀림없이 그렇게 판단될 거다. 다만 그때도 너는 모를 거다.
멍청한 것을 혐오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무조건 반사다. 바퀴벌레를 보고 본능적으로 혐오하면서, 생명체를 혐오하는 본인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건 정신병 아닌가. 나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 멍청한 것을 혐오하는 것에 대한 양심적 가책을 스스로에게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여러 명을 또 거름망에서 거른다. 오만하고 반사회적인 처사라고 손가락질할 일이겠지만, 그건 오롯이 내가 감당하고 내가 책임질 나의 문제다. 무엇보다 나는 감정을 타인에 대한 태도나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해하기를 포기하면, 그냥 그대로 둔다. 그렇게 수렴해 가다가 종국에는 나 혼자로 남아도, 그것도 예상 가능한 일이고 나는 감내한다.
Epiphany. 아주 좋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