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전야다. 애인이 있을 때건 없을 때건 항상 나자렛 예수 생일의 전날 밤일 뿐인데, 라고 생각한다. 신실한 모태신앙의 천주교도였을 땐 전야미사를 가고 성 연극 같은 것에 참여해서 전야미사 후 공연 같은 걸 하고 선물을 받곤 했다. 다음날에도 일어나자마자 성탄절 미사를 갔다. 이것이 나자렛 예수의 생일에 대한 지극히 합당한 의례일 텐데.
온갖 나라의 온갖 인간들은 온갖 시대부터 온갖 이유를 붙여 자기들의 놀이에 성탄절이라는 정당성을 부당하게 차용해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치킨 체인의 마케팅으로 KFC치킨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예수 생일 전날에 꼭 이성과 만나고 비싼 것을 먹고 사람이 미어터지는 데엘 가고 기필코 같이 자야만 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에대해 근거없는 자괴감을 느낀다. 지나가던 예수가 어이없어 웃을 일이다.
내가 있는 곳은 오래된 우물 속인데, 물에서 썩은 내가 나기 시작해서 사용도 중지돼 버려진 곳이다. 이곳엔 그 물처럼 고린내가 나는 늙고 살진 개구리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그 시취 같은 썩은 데다가 버려지고 잊혀져, 아무리 늙고 굶주린 맹금류조차 이곳의 그 개구리들을 씹어삼키러 오지는 않는다.
늙고 살진 개구리들은 그걸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또 그 사실을 잘 알고서는 마음껏 아둔하고 비열한 짓거리를 한다. 이곳에서 나고자라, 어둡고 습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는 두 평 남짓한 이 우물바닥이 세계이다. 밖에서는 포식자를 만날 수 있다는 리스크만큼의 자유와 달큰한 새벽녘 풀향기나 신선한 곤충들 같은 맛있는 별미도 있으나, 안에서 그들은 눈먼 바퀴벌레 마리수로 봉록을 정하고 자기들끼리의 위계를 만들고 파벌을 만들어 머리수 채우기에나 골몰하고, 울고불며, 두 평 안에서 유통되는 소문과 음모는 우물을 넘칠 수준이다. 그럼에도 영원히, 이 우물바닥이 그들에겐 세계이다.